아베 전 총리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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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논설위원

지난달 16일 일본 제99대 총리에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가 취임한 지 한 달 남짓이 지났다. 평범한 사립대를 고학으로 졸업하면서 총리까지 올라선 입신출세의 사람으로 취임 시에는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관방장관을 오래 지내 지명도는 높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스가는 그다지 두드러진 존재가 아니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6월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차기 총리 적임자’로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관방장관이 31%이었던 데 비해 스가 총리는 3%에 불과했다.

게다가 최근 ‘일본학술회의’가 추천한 위원 105명 가운데 6명을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임명 거부한 문제로 아베 전 정권 못지않게 불투명한 체질이 드러나면서 벌써 지지율이 50%대 전반 수준으로 떨어졌다(지난 18일 자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53%).

외무상으로는 지난해 8월 취임한 모테기 도시미쓰가 유임했으며, 스가 총리 자신도 아베 정권의 대내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 한일 관계도 당장은 이렇다 할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스가 총리는 올해 말 한·중·일 정상회담에 관해서도 강제징용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참석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대한국 정책의 변화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가는 아베처럼 완고한 ‘역사수정주의자’가 아닌 것 같고, 보다 실용주의적인 자세로 한일 관계에 접근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2015년 말 한일위안부합의가 무산된 것에 의한 충격을 덜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일위안부합의는 일본군위안부 희생자에 대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해서’ 아베 총리가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하고, 위안부를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이 10억엔을 지출한다는 것으로, 일본 입장으로는 최대한의 양보를 해서 이루어진 합의였다.

물론 한국 입장에서 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에 관한 언급이 없고 ‘피해자 중심 어프로치’라는 차원에서 하자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평소 위안부 문제의 가해 책임을 부정해 온 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로부터 이끌어낸 합의로써는 더 이상 기대 못할 만큼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애당초 아베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한일 양국에서의 시민운동이나 국제사회 압력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도 측근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당시)이 합의를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아사히신문 8월 30일 자). 한편, 합의를 어떻게든 막으려는 아베 주변 우익들의 간섭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아베는 그러한 주변 우익들의 제지를 뿌리쳐서 합의를 결단한 것이다. 그런 만큼 합의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사실상 파기된 데 대한 아베의 충격은 거의 트라우마라 해도 좋을 만큼 컸을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때를 잘못 만난 것 같다. 촛불 혁명의 열기 속에서 위안부 합의는 ‘적폐’로 청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비정상적인 정책은 아베의 그러한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스가는 그러한 트라우마까지 아베와 공유하지 않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위기를 한일 관계 재정립의 계기’(아사히신문 5월 13일 자 사설)로 삼자는 일본 국내의 여론도 적지 않아, 머지않아 관계 개선의 단서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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