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창조
모방과 창조
  • 제주일보
  • 승인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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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하늘을 무대 삼아 마음껏 기량을 펼치던 햇살이 텃밭으로 정원으로 잠자리 날개 위로 골고루 내려앉는다. 푸르기만 하던 나뭇잎들이 어느덧 알록달록 물들어 가는데 생의 마무리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감동스럽기만 하다. 길가 노란 민들레꽃이 어느 날 하얀 솜사탕 같은 홀씨가 되어 스치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날아갈 기세다. 계절은 이렇게 자연의 흐름을 타고 또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고대인은 대부분의 지혜를 자연에서 얻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에서 답을 구했다. 인간에게 늘 감동을 주면서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라틴어 ‘호모 미미쿠스(Homo Mimicus)’라는 단어가 있다.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생존하는 데 적합한 자연을 선택해 어떤 문제라도 모방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모방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단풍나무 씨앗으로 헬리콥터 날개를 구상하는가 하면, 새와 박쥐의 뼈 구조를 모방해 비행기 계기판을 그려낼 만큼 창조는 모방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이 타인의 외모 추종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유명 배우가 들었던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매달 적금을 드는가 하면, 남에게 잘 보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구매 의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밀라노 할머니 ‘밀라논나’라는 분은 자신의 삶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삶의 선배로서 솔직·진솔·겸손함을 갖춰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도 디자이너지만 남이 만든 명품은 입지 않아요. 본인이 명품이면 되거든요. 비싼 옷을 입거나 명품 가방을 멘다고 자신의 가치가 오르는 게 아닙니다. 내면을 쌓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공부가 더해질 때 저절로 명품이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편안한 것을 선택해 입어 보고, 신어 보다가 나만의 개성을 찾으라는 것이다. 모방이 모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분명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닌데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가 뭘까. 외적 아름다움만 보기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깨닫게 한 까닭일까.

딸은 어머니를 모방하고 제자는 스승을 모방한다고 했다. 한 연주자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어머니가 계셨다. 어릴 때부터 매일매일 연습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됐단다. 자연의 소리를 모방해 음악을 만들고, 소리를 천착해 논문을 썼다. 모든 소리를 악기로 흉내내다 보니 새로운 소리를 만들게 됐다고.

창조는 창조를 불러오고 욕망은 욕망을 불러온다. 예뻐지려는 욕망으로 성형을 했지만 얼굴이 붓고 흘러내려 수십 번째 성형했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빠져 결국 극단적으로 가고 말았으니…. 끝없는 욕망의 고삐를 놓치면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의 불행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 호모 미미쿠스다. 친구는 친구를 모방하고, 이웃은 이웃을 모방한다. 주변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떤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의 거울을 살피고 좀 더 맑고 환하게 비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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