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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상의 단조함에 대한 가벼운 저항인가. 언제부턴가 습관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을 열면 그 너머 한라산 어깻죽지로 눈이 달려간다. 어떤 손이 비질했나. 간밤에 잔뜩 머물렀을 구름 한 조각 떠 있지 않다. 활짝 열린 아침 산은 세상을 비추는 장대한 명경 같다. 이 섬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는 아득한 상상에 닿는다.

무서리 밟고 산을 가파르게 내린 산의 정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거기 겹겹이 에워싸인 내 사유의 둘레로 한 좨기 소슬바람 지나간다. 머릿속엔 생각다 만 어제의 잡념 같은, 풀지 못한 채 침전된 앙금 같은 것들, 한 톨도 남아 있잖다. 하수종말처리를 끝낸 삽상한 아침이다.

어디를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처럼 딛고 선 자리가 허술한 느낌이었다. 코로나19가 침노해 삶을 제멋대로 재단하며 휩쓸고 패대기쳐 놓은 지 일 년이 돼 간다. 그 새, 딴 세상을 살았는지 모른다. 처음 듣는 생뚱맞은 말들로 난분분해 일상이 마치 ‘엄마’ 하며 입을 떼려는 아이처럼 낯설었다.

마스크, 손 씻기, 강화된 거리 두기, 방역, 음압병실, 확진자, 신천지, 팬데믹, 집단감염, n차 감염, 깜깜이, 원격수업, 비대면, 집콕, 드라이브 판매, 언택트….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에 내몰리면서 그동안 남루로 너덜댔다. 일상이 일그러지면서 폭풍 같은 긴장이 밀려와 불안했다. 누구를 만나기는커녕 한마디 안부를 묻기도 거북했다. 사람으로 살기를 체념하면서 마침내 문을 닫았다. 빗장을 걸어 방콕이 넓혀지더니 집콕이 됐다.

소상공인들의 아슬아슬하던 기반이 헐리면서 그예 무너지고 있다. 하필 연거푸 치고 빠지듯 태풍 바비, 마이삭, 하이선이 엎치고 덮쳐 넋을 놓게 했지 않나. 휩쓸려 떠내려간 농작물, 과수원에 떼 주검으로 나뒹군 낙과 앞에 차마 울지도 못해 가슴 쳐야 했다. 가난해도 선량한 이 나라의 농부들. 그들은 수마가 할퀴고 간 땅에 다시 씨앗을 뿌렸다. 도시 사람들은 배추 한 포기에 1만1000원하고도 잔돈을 더 얹어야 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코로나19 선제 대응에 성공한 사례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질병과 사투로 맞섰던 노고의 축적으로 우린 희망을 앞당겼다. 코로나19도 두 자릿수에 머물고 있어 고비를 넘겼잖을까.

자연으로 돌아갈 때다. 그 속에 들어 오묘한 속정을 음미하면 잊었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자연 만한 신비주의, 계절 만한 미학은 없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찾던 곳이 산과 들이다. 이제 멀고 가까운 산야로 눈을 보내면 어떨는지. 가을 산은 온통 단풍의 축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붉고 노랗게, 산을 와락 물들인 형형색색의 단풍. 이 순간, 누군가 산등성마루를 타고 오르며 거대한 붓으로 고운 채색을 올리고 있다. 저 현란한 스펙트럼, 그 속엔 눈에 나기 쉬운 다갈색도 들어 있으니 놓쳐선 안되리. 감춰진 것엔 아름다움이 숨는다.

산을 내리거든 그리운 이에게 기별하는 것 잊지 말아야지. 한 줄의 단문을 띄운 엽서에도 눈시울을 붉힐지 모른다. ‘가을 단풍 숲으로 겨울 오는 소리’. 음산하고 지루하다 하나 겨울은 어차피 나야 한다. 그 뒤로 숨차게 달려오는 봄.

카톡이나 메시지 말고, 오랜만에 꾹꾹 눌러 쓴 손편지는 어떨까. 다음으로 갈 곳이 있다. 사람 그리워 발소리에 귀 기울이는 빨간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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