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약동은 제주목사 재직 중 아전들의 부정과 민폐를 단속해 근절시키고, 조정에 바치는 공물의 수량을 감해 백성의 부담을 덜어준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다. 백성들이 그 고마움에 송덕비를 세우려고 했으나 이를 마다했으며, 한라산신제를 산천단에서 행하게 해 제주도민들이 산신제를 지내다가 동사하는 폐단을 시정하기도 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제주에서 사용했던 모든 물건을 두고 갔는데, 모르고 들고 온 관물(官物)인 말채찍을 성루 위에 걸어놓고 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항해 중 배가 파선의 위기에 처하자 하늘을 속인 노여움이라 단정하고 배 안을 살펴 부하들이 몰래 넣어둔 갑옷을 찾아내 강물에 던진 투갑연(投甲淵)의 일화를 가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성종 때 청백리로 뽑혔다.
이약동은 자손들에게 ‘견금여토(見金如土)’를 지키도록 했다. 돈 보기를 흙같이 여기라는 의미로, 실제 그는 평생 동안 청렴을 실천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공무원은 청렴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를 많이 본다. 최근 몇 년 동안 공직자의 청렴도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지만 주민이 요구하는 공무원의 청렴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지고 있어 공직자들은 그 기대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 것이 아니므로 함부로, 쉽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내 것이 아니므로 더 아끼고 중히 여겨야 한다는 소소한 실천이 가장 기본이 아닌가 한다. ‘나라 재산이면 바늘 하나라도 탐내지 말라’고 일갈했던 청백리 이약동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강의철, 제주시 한림읍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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