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의 원도심 산지천에서 추억을 회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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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산지천난장(上)
오래된 건물 사라져도 옛 도심의 얼굴 간직한 산지천
애틋한 어린 시절 기억 떠올려
바람난장은 제주 원도심의 상징, 산지천을 찾았다. 여전히 이 안에는 동네 터줏대감격인 오래된 포목점들과 동문시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사라졌으나 산지천 일대는 옛 도심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홍진숙 作, 흐르는 산지천
바람난장은 제주 원도심의 상징, 산지천을 찾았다. 여전히 이 안에는 동네 터줏대감격인 오래된 포목점들과 동문시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사라졌으나 산지천 일대는 옛 도심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홍진숙 作, 흐르는 산지천

산지천과 남양여인숙

콩나물시루처럼 꽉 들어찬 만원 버스도 안내양의 출발 소리 없이는 떠날 수 없던 시절. 거친 붓질로 그려낸 남루한 영화간판에도 가슴이 뛰고 웃돈을 얹어서라도 영화표를 손에 쥐었던 시절. 양복점 재단사의 가위질 소리와 골목 밤을 수놓던 어머니의 그리운 재봉질 소음까지.

떠올려보면 눈 시린 아련한 풍경들입니다. 붙잡을 수 없는 게 세월이라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어떤 곳은 변해가며 세월은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그 흑백사진 같은 시절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지금 바람난장은 제주 원도심의 상징, 산지천에 서 있습니다.

여전히 이 안에는 동네 터줏대감격인 오래된 포목점들과 동문시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뱃사람들의 하루를 열어온 산지포구도 역사를 같이 합니다. 일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사라졌으나 산지천 일대는 옛 도심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나기철 시인의 ‘남양여인숙’을 들고 나왔다. 산지천에 기대어 살던 누추했던 그들의 삶도, 남양여인숙에서 보낸 반짝거리던 청년들의 낭만도 떠올려본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나기철 시인의 ‘남양여인숙’을 들고 나왔다. 산지천에 기대어 살던 누추했던 그들의 삶도, 남양여인숙에서 보낸 반짝거리던 청년들의 낭만도 떠올려본다.

코로나 19로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바람난장. 오늘은 작정하고 지난 시절을 소환하려나 봅니다. 시낭송가 김정희님이 나기철 시인의 ‘남양여인숙’을 들고 나왔습니다.

동부두 가는 길목
문무병의 남양 여인숙
아직 그대로 있다
그 옆 희망 여인숙과 함께
그이 군대 가기 전
세계 문학 전집 읽고
당시(唐詩) 필사하던 뒷방
부두에 여객선 들어올 때
손님 붙들던 앞길
일본으로 시집 갔다는
그 누이 계순이
만들어 주던 비빔 국수
한번 불탄 적도 있던 집
만년 야당 부위원장 하던
그 아비 얼마 전
가 버리고
IMF 온 오늘까지
남양의 불빛처럼
남양 여인숙
오늘도 어둠 속
단단히 서 있다

나기철 ‘남양여인숙’전문

산지천 물길 끝자락, 동부두 가는 길목에 오롯이 서 있던 남양여인숙. 누군가는 사랑을 흠모하고 누군가는 밤새 술잔을 채우며 우정을 다지던 곳입니다. 시인에겐 ‘군대 가기 전 / 세계 문학 전집 읽고 / 당시(唐詩) 필사하던 뒷방’이라는 이름의 아지트였나 보네요.

‘부두에 여객선 들어올 때 / 손님 붙들던 앞길’로 묘사된 그 길 언저리. 아마도 핑크빛 형광 조명이 불 밝히던 산지천 일대를 말하나 봅니다. 밤새 잠들지 못해 흥청거리다가 새벽이 돼서야 물 흐르는 소리만 나직이 흘렀을, 그 감춰진 곳. 그러나 지나고 나면 다 눈물겨운 시절입니다. 산지천에 기대어 살던 누추했던 그들의 삶도, 남양여인숙에서 보낸 반짝거리던 청년들의 낭만도...

시에 등장하는 문무병 선생은 시인이면서 제주의 무속연구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한 시대를 풍미하던 로맨티스트였다고 하죠. 선생이 학창시절 살던 집이 다름 아닌 남양여인숙이라니, 동시대를 살던 이들의 가슴 속에 이 시는 그 자체로 짙은 향수입니다.

가슴 한 구석 자리 잡고 있는 추억 한 편을 불러내고 싶을 즈음 노래가 흘러나온다. 성악가 윤경희님이 패티김의 ‘이별’을, 이어서 황경수님과 함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띄운다.
가슴 한 구석 자리 잡고 있는 추억 한 편을 불러내고 싶을 즈음 노래가 흘러나온다. 성악가 윤경희님이 패티김의 ‘이별’을, 이어서 황경수님과 함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띄운다.

사라져 가는 것이 애틋한 건 낡은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지나온 과거는 바래고 흐릿해서 더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 한 구석 자리 잡고 있는 추억 한 편을 불러내고 싶을 즈음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성악가 윤경희님이 패티김의 ‘이별’을, 이어서 황경수님과 함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띄웁니다.

가을이 깊어간다. 산지천의 가을은 또 무던히도 변해갈 이 도시의 희로애락을 끌어안고 저물어간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리움의 계절이 또 지나간다.
가을이 깊어간다. 산지천의 가을은 또 무던히도 변해갈 이 도시의 희로애락을 끌어안고 저물어간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리움의 계절이 또 지나간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산지천의 가을은 또 무던히도 변해갈 이 도시의 희로애락을 끌어안고 저물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리움의 계절이 또 지나갑니다.


사회 - 정민자
그림 - 홍진숙
시낭송 - 김정희와 시놀이 (이혜정 장순자)
소금 - 전병규
반주 - 현희순
성악 - 황경수, 윤경희
플롯 - 이관홍
사진 - 허영숙
영상 - 김성수
글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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