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풍광이 기른 변시지 그림의 미학
제주 풍광이 기른 변시지 그림의 미학
  • 제주일보
  • 승인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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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근원에 가 닿으면 언어를 잃는다. 가나아트센터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 전시회(2020. 10. 16.~11. 15.)의 작품들은 말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보릿대가 잘 여문 이삭을 떠받치던 빛에서부터 강렬한 태양과 해풍을 머금고 파리하게 말라갈 때까지의 빛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변시지의 페르소나와 그림자이자, 제주의 거친 삶의 흔적이자 인간 근원의 문제를 건드린다. “50세가 되던 1975년 제주로 귀향한 후 38년 동안 황토빛 노란색이 탈법(脫法)과 진화를 거쳐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으로 완성된 주요 작품”이라고 ‘송정희(공간누보 대표)’는 전시된 작품들을 소개했다.

누런 바탕은 출렁대는 바다를 뒤덮고, 작열하는 태양이며 하늘을 뒤덮는다. 거기에 문인화의 검은 선이 태풍 앞에 쓰러질 듯한 초가집, 부러질 듯 버티고 선 소나무, 말총을 휘날리며 울어대는 말, 망망대해 수평선 아래 흔들리면서도 꿋꿋한 배를 그려낸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서 바람과 맞선 사람, 초가집 속에 웅크린 채 몸부림치는 사람이 검게 그려진다. 노란빛과 검은빛의 술렁거림은 온갖 변주를 낳으며 인간의 근원적 몸부림을 떠올리게 한다.

변시지는 “예술은 완성이 없다. 예술에서 깨달음을 얻는 경지까지 이르러 작품을 남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제주도는 아열대 지방이라 태양광이 강렬하므로 모든 고유색이 변화한다. 하얀 모래가 강렬한 빛 때문에 황색으로 변화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 이것이 제주도 색이 아닐까 생각했다.”라고 하며 ‘제주 시대’에 형성된 누런 색채의 기원을 밝혔다. 그리고 “동양미의 관찰은 천지의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천지현황(天地玄璜), 검은 현(玄)은 하늘의 색이요, 누를 황(璜)은 땅의 색이다. 하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땅은 하늘로부터 받아들여 모든 형태를 만들어낸다. 사람도 그 소산이다.”라는 철학이 작품의 근원임을 밝혔다. 검은색이 하늘, 누런색이 땅, 그 둘 사이에 선 사람을 그렸다는 것이다.

신성한 하늘과, 인간이 선 땅·바다를 이어주는 그의 그림 속 ‘수평선’들은 흔들리면서 뚜렷한 검은 선을 점점 지워 나간다. 그리고 제주를 자주 훑고 지나는 바람은 “고독, 인내, 불안, 한(恨), 그리고 기다림 등”으로 그에게 인식되면서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숙명적 삶의 고통을 상징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신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심방’과 같고 ‘부적’과도 같은 기능을 갖는다. 그렇게 수많은 부적들은 바람을 맞으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던 제주 토박이들을 위무하고,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제주인의 기상을 자랑스러워하며 굿마당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러고 보면 변시지의 그림은 ‘영등할망’의 주술성과도 많이 닮았다. 외방신인 영등할망은 어부들이 탄 배가 폭풍우 때문에 외눈박이 거인이 사는 섬으로 휩쓸려 가는 것을 구해주고 풍년도 이루게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외눈박이 거인들에게 죽임을 당해 온몸이 찢긴 채 소섬에 머리가, 한수리에 사지가 떨어지고, 몸통은 성산에 밀려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영등을 신으로 모시며 굿을 하니 풍년도 되고 ‘바당’ 사고도 없었다 한다. 변시지 그림은 제주인들, 나아가 생사의 문제를 비롯해 근원적 고통 속에 휩싸여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주술사의 부적이 아닐 수 없다.

변시지는 제주의 풍광이 길러낸 위대한 화가다. 그 제주의 풍광을 난도질하겠다는 이들이 악귀가 되어 칼춤을 춘다. 나는 그 칼춤을 멈춰달라고 그의 그림을 보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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