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에 큰 발자국 남기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에 큰 발자국 남기다
  • 김문기 기자
  • 승인 20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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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금 없어 한때 진학 포기…은사 도움으로 학비 마련
국외여행인솔자협회 출범 주도·중앙박물관 건립 등 추진
“제주관광, 해양·건강 상품 개발해야…비싼 요금 근절도”
송동근 이사(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2009년 9월 한라-백두 남북교류 사업으로 백두산에 올라 우리측 방문단과 함께 한 모습.
송동근 이사(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2009년 9월 한라-백두 남북교류 사업으로 백두산에 올라 우리측 방문단과 함께 한 모습.

송동근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이사(72)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주 출신으로는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다.

재임 중 국립중앙박물관 건립무주 태권도원 조성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고, 퇴임 후에도 태권도진흥재단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지금도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송동근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이사는 문화체육부 국제관광과장 재임 시 국외여행인솔자(TC, Tour Conductor) 양성교육 제도 도입에 힘썼던 그는 퇴임 후 한국국외여행인솔자협회를 결성해 2018년까지 회장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관광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주요 관광지에 배치돼 운영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제도도 송 이사의 작품이다.

송 이사는 재경 제주공무원 친목회장(11), 서울 제주시 향우회 부회장(14), 재경 제주도민회 부회장(24), 재경 제주도 정책자문위원, 재경 제주시 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아 고향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했다.

LA올림픽과 88올림픽 유공에 따른 체육부장관상을 비롯해 근정포장, 체육훈장 백마장, 체육훈장 거장상 등 각종 훈·포장을 받았다.

학창 시절의 기억

송 이사는 1948년 제주시 삼양1동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 살 때 부친과 작별했다. 조부모에 이어 부친도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를 따라 일을 도왔고, ·중학교 때 수업이 없는 휴일에는 이웃집 소를 끌고 목장에 올라가 풀을 먹이며 용돈을 벌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는데 당시 6학년 담임이던 전영시 교사가 입학금을 냈으니 나중에 갚아라며 도움을 줘 남들보다 일주일 늦게 조천중학교를 다니게 됐다.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어 오현고등학교 야간반 시험에 도전했고 다행히 체육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그런데 입학금 등 학비가 문제였다.

마침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던 전 교사의 소개로 초등학교에서 급사일을 하며 1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는 야간에서 주간으로 옮겼는데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신승행 교사의 소개로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중·고교 시절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울컥해질 때마다 공부는 때를 놓지면 안된다며 다독이던 전 선생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송 이사는 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라며 “6년 전 돌아가실때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공군사관학교 진학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입학금과 등록금이 문제였다. 결국 학비가 들지 않는 사관학교 진학을 결심하고 재수 끝에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송 이사는 1973년 소위로 임관한 후 장교로 근무하던 중 사관학교 출신 장교를 대상으로 5급 행정직 특채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197910월 공군대위 예편 후 같은 해 체신부 전파관리국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체육부 국제경기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82년 인도 아시안게임에 우리 선수단과 함께 참여한 송동근 이사.
체육부 국제경기과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82년 인도 아시안게임에 우리 선수단과 함께 참여한 송동근 이사.

공무원 생활

송 이사는 197910월부터 20059월까지 26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분야에서 일했다. 공무원 재임 중 LA올림픽(86), 서울올림픽(88), 베이징올림픽(2008) 3개 올림픽과 인도 아시안게임(82), 베이징아시안게임(90)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 파견돼 선수단 지원을 통한 성적 향상에 힘썼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장을 맡아 200412월 박물관을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에 따른 주한미군 헬기장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부와 주한미군 관계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설득해 박물관 건립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한국국외여행인솔자협회 출범

송 이사는 2010년 국외여행인솔자(TC, Tour Conductor)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한국국외여행인솔자협회 출범을 주도했고 20183월까지 회장을 맡았다.

송 이사는 문화관광부에서 국제관광과장으로 일할 때 TC의 역할 확대와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TC양성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도 주요 대학이 양성교육 기관으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한국국외여행인솔자협회는 TC들의 소통의 장 마련,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성장 및 발전을 위한 지원·교육을 위한 단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200910월 발기인총회 이후 1년 뒤인 201010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법인 승인을 받았다.

TC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은 물론 이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법률, 노무 회계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고충상담실도 운영하고 있다

송 이사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었다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고 관광산업이 회복되면 TC들의 자질과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 관광이 나가야 할 방향

송 이사는 제주 관광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으로 해양을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 자연 자원을 이용한 건강·치유상품 개발. 체류형 상품 개발 등을 제시했다.

해양을 활용한 프로그램으로는 세일링, 수상스키, 파도타기 등 마리나시설을 통한 고가 상품과 바다 낚시터 조성 등을 예로 들었다.

삼양해수욕장 검은모래 등 자연자원을 활용한 건강·치유상품을 내놓고 오솔길 등을 조성해 힐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제주 관광이 해외 관광보다 비싸다는 국민들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바가지 요금 근절에 노력하고 항상 미소와 친절로 관광객을 맞이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억에 남는 주요 사업

송 이사는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과 무주 태권도원 조성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일이 가장 힘들었던 만큼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전국 지자체들이 유치를 위해 각축을 벌였던 태권도공원 조성 사업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녔던 일도 엊그제 일 마냥 생생하게 떠오른다.

제주월드컵경기장 유치를 위해 월드컵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탐라영재관 건립에 따른 국비 지원을 위해 발벗고 나섰지만 제주도는 당시 많은 도움을 준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에게 알리지도, 초청하지도 않은 채 준공식을 열었다

탐라영재관 건립을 지원한 부서 국·과장을 비롯한 관계자들로부터 호된 핀잔을 받은 일도 있었다.

한라-백두 남북교류 사업으로 남측 방문단 일원으로 백두산을 방문하며 갖고 간 실물 크기의 돌하르방 2기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도 궁금하다.

송 이사는 “200991차 남측 교류단의 백두산 방문이 성사된 후 같은 해 10월 북측 교류단의 한라산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당시 답방이 성사됐다면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문기 기자

kafka71@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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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im 2020-11-06 13:21:57
이런 분이 계셨군요. 만나뵈서 살아오신 소중한 삶의 추억을 듣고 싶은 분입니다.

가은엄마 2020-11-04 20:53:51
지금도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선배라는 말을 지인에게 들은 적 있습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 사무총장 당시 뵌 모습은, 조용히 업무를 진행하시고 특히 발달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좋은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