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를 위한 시간
갈무리를 위한 시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박영희 수필가

냉장고가 텅 비었다. 추석도 지나 마음도 허전하고 허기를 채우려면, 먹을거리라도 채워야 할 것 같아 시장에 나갔다. 어느 한 가지 선뜻 손이 가지 못할 만큼 너무 올랐다. 해마다 추석 무렵부터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올해 장바구니 물가는 턱없이 숨차다.

전에 없던 긴 장마에 연이어 몰아친 태풍으로,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과일과 채소가 평소보다 급등했다. 뿌리가 썩고 줄기가 녹아 결실이 부실하다고 농민들은 한숨짓는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사는 제주다. 싸고 흔해 즐겨 먹었던 갈치, 고등어가 어느 날부터 신분 상승을 하더니, 부담 없이 먹기가 주저된다. 은비늘 번쩍이는 늘씬한 갈치와 등 푸른 고등어가 기세등등해 격세지감이 든다. 경제가 어려워도 먹거리 물가만큼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이어야 할 텐데, 서민들의 살림이 점점 힘겨워진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대책은 없는지. 늘 아쉬운 부분이다.

이즈음 농부들의 마음이 풍성해지는 때다. 추수해 곳간에 가득 채운 곡식으로 풍족하고 든든하다. 애쓰게 지은 농사인데 가을걷이가 신통치 못할 것 같아 허탈해한다. 자식들에게 골고루 넉넉히 나눠 주던 농산물인데 빈약할까 걱정이다. 이번 명절에는 오지 말라 하던 허리 굽은 부모님 마음은,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오랜만에 자손들이 모일 수 있는 때가 명절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에 뺏겼다. 그러나 언제든지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시골은 정서적으로 풍요롭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함께 자라던 형제와 친구, 정든 산과 바다가 있어 정신적인 안식처다. 부모가 안 계시면 고향도 멀어지고 타향처럼 느껴진다. 여자에겐 친정이 늘 그리워 가고 싶은 곳인데, 나이 들면 마음속에 있을 뿐, 뒷전으로 밀려난다.

올해는 유별난 자연재해로 가혹했다. 사람은 코로나19로 고통을, 농작물이나 산야는 긴 장마와 태풍에 마구 휩쓸렸다. 항상 빼앗기만 하는 인간에게 지구가 노했는지. 올여름은 자연의 위대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겪었다. 한없이 자애롭다가도 예측할 수 없이 순간에 매몰차게 몰아치는 자연. 순수한 옛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었으리라. 자연을 아끼라는 경고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10월의 막바지. 한 뼘의 햇빛조차 은혜롭다. 산봉우리부터 서서히 붉은 빛이 내리막을 타더니, 온 산이 불을 지른 듯 활활 타오른다. 지천으로 피던 야생화는 장마와 태풍으로, 제빛을 못 낼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내가 좋아하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솔체꽃이나 쑥부쟁이, 물매화가 상처 입지 않았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울담을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찢긴 잎이 남루하다. 태풍으로 잎을 잃은 가지에 상처투성이 대봉감이 붉게 익어 간다. 열매를 단 채 우듬지엔 연둣빛 새잎을 피우는, 세상이 어지러우니 나무도 혼란을 겪고 있구나. 상처를 딛고 치유해 가는 감나무가 대견하다. 담장 밑에 비스듬히 누운 국화도 허리를 곧추세우며, 곧 꽃을 피울 것 같다. 사람이나 동식물 할 것 없이 시련이 깊을수록 성숙해진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낯설고 어색한 비대면 시대. 외롭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으나 이제 서로 관계의 깊이와 거리를 생각할 때다. 힘들었던 만큼 안으로 내실을 키우며, 알찬 갈무리를 위한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