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처당(燕雀處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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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구한말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김홍집은 한 권의 책을 고종에게 전달했다. 일본 주재 중국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이다. 이 책은 당시 조선의 상황을 ‘연작처당(燕雀處堂)’에 빗댔다. 집이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처마 밑에서 한가로이 노는 제비와 참새가 바로 조선의 처지라는 비유다.

그러면서 조선이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계(親中·結日·聯美)해 부국강병을 도모하라는 전략을 조언했다. 고종은 중신들에게 회람시킬 정도로 관심을 보였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시대의 요구를 읽지 못했다.

이처럼 안락한 생활에 젖어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가 연작처당이다. 공자의 9세손인 공부가 지은 ‘공총자’에서 유래한다.

▲최근 중국이 요란하게 전개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캠페인은 우리의 안보에 많은 걸 시사한다.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의 침략전쟁에 맞선 정의의 전쟁이라고 왜곡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피아관계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침묵이다. 더 심각한 건 한미 간에 냉기류만 흐른다는 점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순회 중인 아시아 4개국에도 한국은 빠졌고, 에스퍼 국방장관이 중국 위협에 맞설 10여 아시아 국가를 열거할 때도 우리를 쏙 뺐다.

그러잖아도 요즘 한미 간엔 불협화음 일색이다. 양국 국방장관이 안보협의회의에서 전시작전권 조기전환 등을 놓고 얼굴을 붉혔는가 하면 주미 대사는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고 앞으로도 선택하는 건 아니다”며 한미 동맹을 폄하했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탄생한 한미동맹은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고 동북아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한반도 평화의 축이다. 6·25 때 미국은 3만명이 넘는 장병이 희생됐고, 한국은 베트남전·이라크전 등 미국이 벌인 주요 전쟁에 모두 참전한 유일한 동맹이다.

그런데 근래 동맹관계가 삐걱대며 국가안보에 구멍이 보인다. 한미 연합훈련을 없앤 것도 모자라 최근 3년간 한 차례의 협동훈련도 하지 않았다. 안보불안은 곧 경제불안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큰 걱정이다.

엊그제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현 안보상황에 대해 ‘연작처당’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모두가 안보위기를 걱정하는데 우리 정치판은 그 지독한 이념 갈등에 당파싸움만 알심으니 갑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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