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우영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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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숙 수필가

 

저녁 일곱 시만 되면 어머니께 전화합니다. 어머니는 온종일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리고 있거든요.

애숙이냐?”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들리면 안심됩니다. 오늘을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면 우영팟에서 놀당 보난 하루가 후딱 가버렸져.”하며 웃습니다.

친정집 뒷마당에는 텃밭이 있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계절 따라 온갖 채소가 자랍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일흔다섯이셨던 어머니는 나는 오 년만 더 살당 가쿠다.”했었는데, 텃밭을 벗 삼아 열여덟 해를 더 살고 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잡초 제거하며 벌레를 잡는 일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합니다.

그 텃밭에서 자란 봄동으로 콩국 끓여 먹고, 어린 무를 뽑아 한 입 깨물면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채소 옆에 있는 냉이 몇 뿌리 캐어 된장국을 끓이면서 봄 향기를 맡고, 대파는 뿌리째 뽑고 와서 우리 집 마당에 심어 놓고 먹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텃밭에 태풍이 두 차례나 연이어 지나가자 곱게 익어가던 고추와 가지들이 상처 나고 엉망이 되었답니다. 남은 고추 골라서 말리고 가지는 삶아 냉동 보관했으며 태풍이 쓸어버린 배추씨는 다시 뿌렸다고 합니다. 거동도 불편하니 이제는 그만하라 하면 지루한 시간도 보내고 이것들을 심어두면 죽기 전에 남의 신세 지지 않아서 좋고, 그 전에 죽으면 누군가는 먹을 것 아니냐.”며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면서 줄 것도 없고 이거라도 가져가라.” 하며 챙겨 주실 때 마다하지 않고 바구니에 담으면 흡족해합니다.

어느 날은 금세 자란 배추를 보면서 된장국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생각나서 허공을 향해 한마디 했답니다.

영감! 금방 따라간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인생 마감 시간이 다 되도록 살아졈수다. 죽는 것도 신이 결정하는 것, 내일을 알 수 없으나 멀지 않은 것 같수다.”

어머니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기에 어머니를 뵙고 오는 날에는 무거운 마음 안고 차에 오릅니다. 차가 떠날 때까지 백일홍 나무 옆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노라면, 먼 훗날 나와 딸들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갑니다.

어머니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부터 앞서 조심스레 받았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네가 갖다준 인물 사전에 나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선생님도 나와서라.” 하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얼마 전에 제주도 인물 사전에 조부님 사진이 나왔기에 갖다 드렸는데 그 책을 읽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일곱 살 때 선생님 성함을 아직도 기억햄수광?”

6학년 때까지 선생님 이름도 모두 기억헌다.”

대단허우다. 나는 생각나는 선생님 몇 분 안 되는데.”

팔십여 년 전 선생님 이름들을 망설임 없이 쏟아내는 어머니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생기가 돕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학교지킴이 일자리도 멈춘 상태라 틈틈이 읽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많아 재미있답니다.

요즘은 어머니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수의는 어디에 있고 영정 사진은 찾기 쉬운 곳에 놔두었다는 등.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찬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갑니다. 언젠가는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되겠지요.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우영팟은 어머니의 최고의 벗이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들도 곱게 자라 꽃을 피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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