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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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 수필가

창문너머로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아파트 북쪽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는 소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어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의 몸짓 그 자체다. 지금은 출생인구가 감소하여 많은 학교가 폐교되었지만 아직 시내권역에서는 학생 수가 많은 편이다.

20여 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남쪽으로는 한라산 능선이 보이고, 북쪽은 바다가 보이는 5층을 선택하였다. 당시만 해도 분양률이 높지 않아 선택의 폭은 자유로웠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아니어도 부엌에서 보이는 초등학교의 넓은 운동장과 무지갯빛 아기자기한 교실의 건축물은 덤이다. 밤바다에 떠있는 고깃배의 불빛은 늘 꿈꾸는 시심을 일으켜 일상에 지치지 않고 오늘을 감사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때의 선택을 흐뭇해하곤 한다.

어느 날 학교 교문에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운동장 이용을 통제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운동장 그림들이 하나 둘 지워져 갔다. 내가 운동장을 이용하거나 시선을 두는 시간은 하루 중 고작 한 시간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에 스며들었던 소소한 행복이 슬그머니 찾아 온 코로나19로 멈추었다. 새벽녘엔 그라운드골프 회원들의 활동 무대가 되고, 주말 아침엔 동네 청년들의 축구경기로 늘 활기가 넘치던 곳, 해질 무렵엔 이웃들이 둘씩 혹은 그룹으로 짝을 지어 걷는다. 나도 가끔은 묵주를 손에 들고 그 대열에 합류한다. 공놀이나 자전거를 타며 뿌듯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온 세상 행복을 다 품은 듯 보이는 젊은 가족들의 모습은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지난 여름방학 땐 손녀와 맨발로 달리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던 기억이 되 살아나며 흐뭇한 감상에 젖어본다.

비오는 날은 또 다른 낭만이 있다. 학생들의 우산은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동요를 부르게 하는 곳 운동장. 운동회 날은 일 년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다. 양쪽으로 나누어 겨루는 게임도 볼거리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계주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달리기에 주눅이 들었던 내가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렇게 20여 년 가까이 누려왔던 일상이 그래서 감사함을 잠시 잊었던 시간을 질책하듯 운동장은 침묵을 시작했다. 고단한 삶의 더께를 풀어냈던 이웃들의 만남의 장이였으며, 가족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누적 되고, 미래의 축구 꿈나무와 마라토너들의 야망도 여물게 해 주었던 공간이 마치 삶이 멈춘 듯 모든 일상들이 멈추어버린 것이다. 감염자 수가 늘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에 바쁜 코로나19는 언제쯤 멈추려는지 그 심사를 알 수가 없다.

올 해는 운동회도, 점심시간 급식실의 줄서기 모습도 특히 전 학년 월요일 조회 등 운동장에 펼쳐지는 다양한 그림보기를 포기해야할 듯싶다. 처음 접했던 운동장 풍경을 기대하는 바람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가늠조차 안 되는 나날이다. 가끔은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했던 소소한 날들이 행복이었음을 알게 해준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곳.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운동장의 풍경. 비워진 자리를 여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등교시간 퍼지는 동요를 따라 부르며 학생들의 웃음소리 운동장 가득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에서 나는 하나의 작은 우주를 품고 있었나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라는 어딘가에서 읽은 글귀가 마음을 후비고, 사람이 멈추니 지구가 숨을 쉰다는 언어에 잠시 나를 돌아본다.

로마의 트레비분수가 몇 년 새 장터처럼 북새통이 되었을 때도 지구의 재앙을 예견하는 메시지를 읽지 못했던 무감각의 감성, 관광객이 멈추자 베네치아 항구의 물이 맑아졌다는 뉴스에서 내가 일조했던 지난 시간들을 미안함으로 만났다. 늦은 감이 있지만 곳곳에서 환경을 살리기 위한 캠페인이 시작되고 있다. 자연과 환경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반성하며 다짐해본다. 작은 실천이 밀알이 되길 기대하며 나 또한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운동장 그림 가득 채워지는 그 날, 나도 아름다운 우주에 하나의 풍경이 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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