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경찰도 별을 달 때다
제주 경찰도 별을 달 때다
  • 제주일보
  • 승인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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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가 고향으로 1947년 태어나자마자 4·3사건을 겪은 이근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4년 전 인터뷰했다. 그는 2002년 치안정감으로 승진했고, 이듬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수장에 올랐다.

지역세가 1%인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경찰청장을 맡은 데는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진급 선례에 따라 그는 경찰청장(치안총감) 1순위로 꼽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2년 임기제를 도입했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잦은 교체로 경찰 조직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청장은 임기제가 시행되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경찰복을 벗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30년간 경찰에 재직하면서 이루지 못한 소망이 있다고 했다. 제주경찰청장을 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경무관으로 승진했을 때 제주경찰청장(지금은 치안감)으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향피제로 고향에 부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제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더는 승진하지 못 한다”며 주위에서 만류했다. 하지만 승진에 불이익을 받더라도 제주경찰청장을 꼭 해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한림읍 금악리 출신인 박진우 경남경찰청장(치안감)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박 청장은 2017년 경찰 서열 2위인 경찰청 차장(치안정감)을 역임했고, 현재 경찰공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88년 고졸로 경찰 간부 후보생(37기)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을 못한 유일한 합격자에다, 공고(한림공고) 출신은 본인 혼자였다고 밝혔다. 승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위직에 오른 비결을 묻자 “남들이 10시간 일하면 30분을 더 했고, 남들이 쉴 때 책 한 페이지라도 더 보자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근표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진우 전 경찰청 차장은 제주 출신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를 후배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도전해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1991년 경찰법 시행으로 전국 시·도에 지방경찰청이 설립됐고, 제주도경찰국은 제주경찰청으로 승격됐다. 그런데 지난 29년 동안 제주경찰청에서 ‘경찰의 별’이라 불리는 경무관은 단 한명도 배출되지 못했다.

제주 출신이 별을 달려면 경찰청 본청이나 서울청으로 가야했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경찰관 85명이 경무관으로 승진했으나 이 중 80%인 68명은 경찰청 본청과 서울청에 집중됐다. 이 같은 편중 인사는 지방에 근무하는 경찰에 대한 차별과 지역 홀대나 다름없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경찰공무원은 11만8651명이다. 계급 별로 치안총감 1명, 치안정감 6명, 치안감 27명, 경무관 63명이다. 별 1개(태극무궁화 1송이)를 단 경무관 비율은 0.00053%에 불과하다.

현재 경찰 개혁이 한창이다. 국수본(국가수사본부)은 수사 업무를, 일반경찰은 치안·행정을, 자치경찰은 교통·경비·안전관리 등에 역할이 분담될 예정이다. 이 같은 개편으로 승진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시·도 지방경찰청에는 경무관 4~5명이 3~4개 과를 지휘하는 부장(部長)을 맡고 있다. 제주경찰청은 차장이 유일한 경무관이다. 향후 부장 직급 신설 시 경무관 보직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부천 원미, 청주 흥덕, 광주 광산, 전주 완산 등 전국 12개 경찰서 서장은 경무관이 맡고 있다. 제주 출신이어서, 제주경찰청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별을 달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승진의 계단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제주 경찰도 이제는 별을 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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