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천생연분
  • 제주일보
  • 승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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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결혼은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의 약속이다.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한때 미움은 시간으로 지워야 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지켜야 한다

우리네 할아버지 세대에는 혼례 당일이 돼서야 배우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어른의 뜻을 거역하면 불효요, 그저 하늘이 정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진지한 애정표현이 없어도 자식 키우는 보람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구시대 방식이라며 버려진 지 오래다

요즘 청춘들은 상대의 잠재적 본능이나 삶의 가치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 득실을 따지며 손해다 싶으면 차갑게 돌아선다. 연애 감정은 별개요, 이별 인사에는 슬픔도 남기지 않는다. 심지어 얼마간의 동거를 해보다가 그때 다시 결정하자는 발상은 그들의 당당함을 보여준다.

주변에 자동차 정비업을 하던 이가 있었다. 천생 여자이면서도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되는 호탕함을 가지고 있었고 늘 밝은 웃음을 전했다.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며 예술과 낭만을 술에 담는 애주가였다. 가냘픈 체격으로 남자들도 버거워하는 일을 예사로 했고 예쁜 치장보다는 공구함이 어울렸다. 매사 거짓이 없었고 약자 편에 서는 정의감은 엄지손 가락 치켜드는 칭찬을 불러냈다.

나이는 오십 전후요, 지식은 맹자, 공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지갑을 열었다. 호불호가 분명해 사소한 감정싸움도 많이 했지만 뒤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그때까지 처녀란다. 시집가는 것을 포기한 게 아니라 여전히 노력 중이란다. 이쪽 분야에서 꽤나 인정받는 실력자라 단골손님도 많은데 지레짐작 엄살에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후 터전을 옮겨 잊고 있었는데 한적한 시골길 찻집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는데 겉의 이미지가 조금 변했지만 특유의 목소리는 반가움 자체였다

그간의 안부를 물어보니 이곳에 정착한 지 삼 년이고 우연한 자리에서 인연을 만났는데 순간 이끌림에 먼저 고백을 했단다. 가난한 농부이지만 충분히 존경하고 둘만의 공간이 있어 행복하단다

어떤 분인가 못내 궁금했지만 숙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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