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아무거나
  • 제주일보
  • 승인 2020.11.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양진 수필가

“아이큐가 높고, 부지런하다.” 어느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물었더니 내놓은 대답이다. 한데 “뭘 좋아하세요?”라는 질문만 하면 대부분이 바보가 된다고 한다.

어떤 대답을 들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일까. 혹, 답을 유추하고 있지 않은가. 정답은 ‘아무거나’이다.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내뱉는 우리네 표현이 외국인에게는 엉뚱한 동문서답으로 들리나 보다. 하지만 음식점 차림표에 ‘아무거나’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이 ‘아무거나’를 입에 달고 산다. 무척 사랑한다.

예전에 밖에서 남편과 볼일을 보다 저녁은 아무거나 먹고 들어가자 한 적이 있다. 분명 아무거나인데 아무거나가 아니었다. 고깃집 앞에서는 내가 싫다 했고, 한정식집 간판 아래에서는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둘이 다른 식성 탓에 한 시간 동안 몇몇 식당 입구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메뉴를 고르지 못한 채, 싸한 분위기와 함께 차머리를 집으로 돌려야 했다. 말로는 아무거나라고 말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 놓지 않으면서 서로 알아주기를 바랐으니.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는 50세 이후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갖출 것을 언급한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유를 그는 ‘절망(絶望)’이 아닌 ‘무망(無望)’에 두고 있다. 절망이란 희망한 것이 어긋난 상태라 다시 희망을 꿈꾸면 되지만 무망은 다르다고 한다. 좋아하는 게 더 이상 생기지 않아 희망조차 꿈꾸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누구도 무망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 마음의 폐허가 된 나이 듦을 원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것은 관심의 영역이다. 무엇인가의 관심은 만족스러운 삶을 영유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20~30대를 MZ세대라 일컫는다. 정보기술에 능통하고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특징이 있다. 이 세대를 상징하는 여러 개의 키워드 중 ‘다만추’라는 신조어를 눈여겨본다. ‘다양한 삶을 만나는 것을 추구하는 세대’의 줄임말로 다른 이의 살아가는 방식도 존중하며, 나만의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이다.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다고 했던가. 삶의 중심에 나를 두는, 그래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옳고 그름이 확실한 젊은 세대의 이런 모습이 자꾸 끌린다.

길을 걷다 우연히 본 보라색 꽃이나 마주한 음식에서 누군가가 생각나는 것은 아무거나가 아닌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서였다.

‘아무거나’에는 내가 없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지, 눈치인지 아니면 귀찮음인지만 있을 뿐이다. 나를 챙기려면 구체적인 자기표현이 필요하다. 적당히, 대충, 아무거나에 나를 맡기지 말고 무엇을 선택함에 나에게 친절한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한 습성을 바꿔 볼 일이다.

의식적으로 ‘아무거나’를 떼어 내려고 하는 것은 나 또한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필 나이가 되었음이다. 하나 습관이란 게 오래된 껌딱지처럼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배달 책자를 넘기며 남편이 뭘 먹을지 묻자 무심결에 대답했다. “아무거나.” 아뿔싸, 또. 신발 끈을 고쳐 매듯 다시 신중을 기한다. 무망에서 멀어지기 위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