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팡
쉼팡
  • 제주일보
  • 승인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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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서른 해를 살던 읍내 동산 집을 떠나왔다. 조그만 단층집이 아담했다. 아파트는 몇 평형으로 등급을 매기지만 시골집은 그런 통념에서 자유로웠다.

정원을 가졌으면 하는 꿈을 실현한 집이었다. 수종이 꽤 된데다 밀식으로 빽빽했지만, 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뤄 내 분인가 했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조합이 사계의 변화를 이끌어 갔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 계절을 알아 피던 꽃 한 송이가 소중했다. 아파트에 와 보니 조경이 수준급이라는 데도 시큰둥했다. 나무, 돌, 꽃 어느 하나 내 것이 아니다. 아끼던 정원이라 몸이 멀어졌는데도 마음은 그곳에 가 있다.

문뜩 그 집 정원 남쪽에 있는 돌 탁자가 그립다. 제주 현무암을 연마해 판을 깔고 돌의자를 마주 놓아 넷이 앉아 담소하던 휴식과 대화의 공간, 제주말로 ‘쉼팡’이 정겨웠다. 돌을 다룬 손매 탁월하기도 했거니와 지붕에 올린 멀꿀 숲이 아늑해 천연덕스러운 분위기가 나를 불러 앉히던 곳이다. 여름내 그곳은 내가 읽고 쓰고 사색하던 곳, 서늘한 내 문학의 산실이었다. 폭염의 계절엔 자연의 바람 속에 앉아야 사상(事象)의 본질이 보인다. 그랬을 때 그것들이 내 은유로 치환되어 언어가 비로소 운율을 타기 시작하면 어쭙잖게 그러나 그게 시가 됐다.

돌탁자 둘레는 안온해 내 영혼이 휴지에 드는 쉼팡이었다. 집을 넘기면서 가장 아까웠던 게 그 돌탁자였다. 값으로 쳐 주지 않은 것인데도 새 주인이 손으로 어루만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가슴 쓸어내리고 있었다.

큰 아파트는 아니지만 청소가 힘에 부쳐 한 달에 두 번 남의 손을 빌리고 있다. 오늘은 청소 아주머니가 집에 오는 날이다. 청소하는 사이 집을 비우는 게 관례가 돼 있다. 서너 시간 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 우리 내외에게 전에 없던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오랜만에 카페를 찾아 대화하다 산책을 하자고 했다. 얼마 만인가. 카푸치노 한 잔씩 받고 앉아 미뤄뒀던 얘기를 꺼내 가며 시간을 덜어냈다. 나는 퍽 하면 글줄쓴다고 입 닫고 지내기 일쑤라,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됐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아내의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 눈만 맞추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길에 나와 산책하며 기분이 처졌다. 연동과 노형동의 접경,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인가. 아파트 담벼락을 지나 곧장 뻗은 길을 걷는데 허리에 압박감이 오고 다리가 뻐근하다. 눈을 씻고 살펴도 앉을 만한 데가 없다. ‘벤치가 있었으면…. 쉼팡은 어디 없나.’ 간절했다. 걷다 찾아봐도 쉴 만한 구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벤치가 아니라도 돌 몇 덩이를 깎아 몇 군데 놓으면 좋았을 걸.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도시 디자인이다. 버스 정류장은 한참 뒤에야 보였다. 힘겨웠다.

몇 년 전 런던에 갔을 때다. 그곳 주택엔 마당이 거의 없단다. 대신 마을마다 소공원이 많다고 했다. 꽃 화분이 줄 선 발코니는 이유가 있었다. 시민들이 쉬는 곳이 아주 쾌적하다는 것이다. 제주시에서도 번화가라 하는 신시가지인데, 잠시 몸을 의지하지 못하겠다. 대로변에 지친 사람 엉덩이 디밀 곳이 어디에도 없는 도시, 앉아 쉬는 풍경이 없다. 왜 노약자 생각을 못하는 걸까.

걷는 이가 있어야 교통 체증이 풀린다. 벤치라야 한다는 게 아니다. 돌 몇 덩이 앉히면 쉼팡이 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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