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는 가을 들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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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산야를 물들인 단풍잎들이 차가운 삭풍에 가녀린 몸부림이다. 모든 초목들은 쇄락의 나락으로 스러져간다. 남녘으로 기운 햇살은 쓸쓸한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고, 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어딘가 분주히 오간다. 괜스레 바쁜 척해야 좀 안도가 된다.

아직도 못 이룬 연초의 계획들은 제풀에 지워져 가고, 이런저런 욕심들도 별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다. 표표히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들을 보면서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야 할 때다.

추억의 그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다보니 해질녘이다. 산과 들의 나목 사이로 석양이 빛살을 길게 늘인다. 황혼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왠지 우울해진다. 가을에 유독 우울증이 덧난다더니 눈물도 매마를 이 나이에 멜랑콜리한 감정이 다 생겨난다.

그렇지만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은 감정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이니 다행이랄 수도 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우울한 감정마저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마음속 감정을 다스리는 감정 기제가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또 내성(內省) 작용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 따라 나뒹굴며 방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다가도 이 좋은 가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픈 감정도 인다. 나이 들어 더 추레한 현재의 자신을 지난 시절과 비교하다보면 우울해지는 건 어쩜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싫든 좋든 우리는 이런 삭막한 시절에 우리의 삶을 수놓아야 한다. 아직은 바람의 냉기도 덜한데 미리부터 겁먹고 움츠리다가는 다가오는 엄동이 힘들어진다. 춘하추동의 변화무쌍한 날씨들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의 삶도 행복이 배가된다. 덥고 춥다고 여름과 겨울을 싫어한다면 우리의 행복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가을의 끝물에 서면 삶의 의욕도 잦아든다. 거기다 코로나에 치이고, 일자리에 울고, 오르는 집값에 힘이 빠지고…. 반갑지 않은 정치 상황들마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한다. 정치권력의 이권 개입 시비나 법무부와 검찰의 공방을 기분 좋게 바라보는 국민은 없다. 상대의 잘못은 추상 같이 다스리면서 자기 허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덮으려는 전대미문의 몰염치가 작금의 정치에서 판을 친다.

그 연장선에서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집요한 공격은 검찰을 정권의 편에 서게 하려는 겁박으로 보인다는 지적들이다. 국민 편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수사하고 단죄하겠다는데 그걸 막으려한다는 우려다. 이런 식이라면 무소불위의 공수처가 발족되면 과연 어느 편에 설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정의로운 국가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정의로운 척 온갖 술수를 부린다.”고 했다. 국민은 국가 권력의 이런 속성을 알고 감시와 비판의 견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는 그 생명력을 이어간다. 국가 권력의 횡포에 대한 묵인이나 굴종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인 괴물로 만드는 행위가 된다.

한 해가 기운다. 국가 권력의 이전투구 양상을 주권자의 감시의 눈으로 편견 없이 직시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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