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소
마음의 시소
  • 제주일보
  • 승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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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모든 건 마음에서 비롯된다. 식상해서 의식의 창고 구석에 놓았던 말이 슬금슬금 밖으로 기어 나온다. 단순히 아는 것과 숨결로 스미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속삭인다. 추워지는 계절 탓일까 아니면 나이테가 노을빛으로 덧칠되는 징후일까.

요즘 사유의 뼈대는 마음의 시소다. 한쪽엔 희망이 반대쪽엔 절망이 앉고, 슬픔은 기쁨과 짝을 이루고 즐거움은 고통과 어울린다.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고 오르내리는 시간, 그게 삶인 걸 깨닫고, 생의 맛이라고 음미한다.

마음이 요동쳤던 일전의 일이 떠오른다. 아침 느지막이 깨어난 아내가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함께 가서 링거라도 한 대 맞고 오자 했더니 혼자 다녀오겠단다. 한낮을 넘어서자 힘들어 운전을 못 하겠다며 얼른 오라는 전화음이 건너왔다.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인가, 아내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는 동안 신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장이 모두 굳어진 듯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고 한다. 119의 도움을 요청하니 10분쯤 지나 도착했다.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달렸다.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채혈하더니 검사에 들어갔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주사액과 링거액을 맞아들였다.

아내의 두 눈엔 눈물이 고였다. 몇 차례 손수건으로 훔쳐주었다. 그 눈물 속엔 고통과 설움이, 어쩌면 일생의 응축된 시간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혼자 남기면 힘든 나날이 될 거라며 자기가 나중까지 돌보겠다던 아내의 말이 가슴을 헤집었다. 아내의 건강을 보살펴 주십사고 나는 기도했다.

다행히 세 시간쯤 지나자 상태가 좀 나아졌다. 약이나 주사의 부작용이었을까. 간 수치가 높다는 의사의 소견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약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왔다. 며칠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땐 맑음이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부재를 통해 실체의 진가를 느끼는 경우가 한둘일까. 두 달 전쯤부터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우리 집 맞은편에 단층 두 채를 허물고 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건축자재를 실은 차량과 레미콘이 드나들고 인부들의 망치 소리에 묻어오는 땀 냄새가 짙어지더니, 쌍둥이 같은 3층 건물 두 채가 뼈대를 내보인다. 길보다 낮은 대지에 자리한 나의 단층집은 더욱 초라해졌다.

상대적으로 낮게 밀려난 건 겸손으로 맞으면 될 터이지만, 한라산 원경이 사라진 건 큰 손실이다. 가끔 바라보며 침묵의 말을 나누고, 쌓인 백설을 보며 마음을 정화했는데, 이젠 부재 아닌 부재의 풍경을 그릴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러고 보니 그날이 그날이고 그 생활이 그 생활이라던 내 생각이 모자랐음을 실감한다. 밝은 곳으로 무게를 실었으면 시소 놀이는 더 즐겁고 행복했을 텐데, 반대편으로만 중량을 실었으니 어리석음이 아니랴.

피카소는 본 것을 그리지 않고 상상한 걸 그린다 했고, 어느 석공은 돌이 원하는 상을 조각한다고 했다.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의미를 캐거나 부여하는 일이 삶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귀 기울이니 먼 산의 발소리가 들린다. 나목들을 품고 마을로 건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려는 듯, 침묵을 한 보따리 둘러메고 순연한 걸음을 옮기고 있으리. 무엇이 힘드냐며 침묵에 온도를 입혀 건네줄 것 같다.

올겨울 눈이 오거든 녹아 스러질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들어 보라고, 그게 사람의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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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언 2020-11-28 21:28:53
사랑으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름답게 인생길 끝까지 걸어가시고 마침내는 천국소망 이루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