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저수지 물결서 느끼는 수몰 마을의 비애
잔잔한 저수지 물결서 느끼는 수몰 마을의 비애
  • 제주일보
  • 승인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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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오름가름과 물메 밭담길
정부, 수산저수지 조성 과정서
공권력 동원 주민 토지 몰수
물메 밭담길 100인 시비 조성
수산 여행 색다른 즐거움 선사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저수지에 있는 물메 둑 길. 물메 둑 길 입구에는 수산리 출신 송두영 시인이 수산저수지에 묻힌 동네의 아픔을 읊은 시 ‘물메 둑 길에서’의 시석이 있다.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저수지에 있는 물메 둑 길. 물메 둑 길 입구에는 수산리 출신 송두영 시인이 수산저수지에 묻힌 동네의 아픔을 읊은 시 ‘물메 둑 길에서’의 시석이 있다.

물메오름 아랫동네를 하동 또는 오름가름이라 부른다. 오름가름은 물속으로 사라진 마을 이름이다. 이곳은 제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수몰(水沒)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물속으로 사라진 마을 오름가름

천연기념물 곰솔이 굽어보는 수산저수지는 처음에는 식량 생산을 위한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됐다.

19593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마을을 흐르는 속칭 답단이내로 부르는 수산천을 막는 저수지 공사를 시작한 제주도는 196012월 수산저수지를 준공했다.

수산저수지의 면적은 127169, 제방 높이는 9.3m, 제방 길이는 420m, 저수량은 681000t, 수로 길이는 4369m 규모이다.

당시 자유당 정부는 제주에서 가장 넓은 인공저수지인 이곳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오름가름과 원뱅디에 거주하던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수산리 주민들의 반대에도 공권력을 동원해 토지를 몰수했다.

이때 오름가름 및 벵디가름에 거주하는 70여 세대가 철거돼야 했으며, 이들은 제주시와 번데동, 당동, 구엄리 모감동 등으로 이주해야 했다.

수산저수지는 1960년대에는 식량 증대에 일부 공헌을 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유원지로 개발해 놀이기구와 유락 시설이 들어서며 성황을 이루던 때도 있었다.

현재 수산저수지 주변에는 식당과 수영장으로 사용됐던 건물과 놀이 시설 등이 방치돼 있다. 수산저수지의 관리는 수산리 마을이 아닌 한국농어촌공사가 맡고 있다. 자치 시대를 맞아 적합한 활용 방법을 창출해야 할 때이다.

저수지에 비친 수산봉의 반영을 쫓아 물메 둑 길을 걸어보자. 잔잔한 저수지의 물결 속에 녹아 있는 수몰 마을 사람들의 비애가 느껴진다. 가끔 저수지 주변에서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드리우는 낚싯줄에 물속에 잠겨있는 마을의 못다 한 꿈이라도 낚아 올릴 수 있기를, 수몰된 마을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그런 염원을 담아 물메 둑길 입구에 있는 시 한 편을 함께 감상한다.

시석 ‘물메 둑 길에서’, 시인 송두영.
시석 ‘물메 둑 길에서’, 시인 송두영.

다음은 수산리 출신 송두영 시인이 수산저수지에 묻힌 동네의 아픔을 읊은 물메 둑 길에서라는 시의 전문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둑 길을 넘던 바람 / 수몰된 밭과 집터에 손에 잡히는 옛 추억 / 까치발 치겨 세우는 내 고향, 어린 동심 / 시퍼렇게 어둠을 헤쳐 달려온 별빛 / 아롱진 얼굴들 저수지 수면에 채우면 / 세월을 헤집어 세운 수몰마을 수산리 하동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물메 밭담길 도처에는 시인 100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메 밭담길. 물메 밭담길 도처에는 시인 100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추억으로 가는 물메 밭담길과 시비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흑룡만리 제주밭담은 수산리에서도 빛난다.

제주도가 지정한 밭담길로는 애월읍의 물메 밭담길을 비롯해 구좌읍 월정리의 진빌레 밭담길, 평대리의 감수굴 밭담길, 성산읍 난산리의 난미 밭담길, 신풍리의 어멍아방 밭담길, 한림읍 귀덕1리의 영등할망 밭담길, 동명리의 수류촌 밭담길 등이 마을마다의 특색을 자랑하며 우리를 과거와 현재로 미래로 안내한다.

특히 수산리의 물메 밭담길 도처에는 시인 100인의 시비들을 세워 오가는 이들에게 문자의 향기를 선물한다.

수산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시비(詩碑)가 조성된 마을이다. 2016년 창의 아이디어 사업으로 한국시인협회와 MOU를 체결해 100인의 시비를 마을 곳곳에 세웠다.

수많은 시비들 사이로 떠오르는 시 하나 암송하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올해는 제주오현 중 가장 먼저 제주와 연을 맺은 충암 김정 선생이 제주에 유배 온 지 5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충암 김정 ‘임절사(臨絶辭)’.
충암 김정 ‘임절사(臨絶辭)’.

이를 기념해 충암 김정의 절명시인 임절사(臨絶辭)를 원문과 함께 소개한다.

臨絶辭(임절사)

投絶國兮作孤魂(투절국혜작고혼) / 遺慈母兮隔天倫(유자모혜격천륜)

遭斯世兮隕余身(조사세혜운여신) / 乘雲氣兮歷帝閽(승운기혜역제혼)

從屈原兮高逍遙(종굴원혜고소요) / 長夜暝兮何時朝(장야명혜하시조)

烱丹衷兮埋草萊(경단충혜매초채) / 堂堂壯志兮中道摧(당당장지혜중도최)

嗚呼千秋萬世兮應我哀(오호천추만세혜응아애)

해석: “외딴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려하니 / 어머님 두고 감이 천륜을 어기었네 / 이 세상을 만나서 나의 목숨 마쳐도 / 구름을 타고 가면 하늘 문에 이르리 / 흠모하던 굴원을 따라 떠돌고도 싶으나 / 기나긴 어두운 밤 언제면 날이 새리 / 빛나던 일편단심 쑥대밭에 묻게 되니 / 당당하고 장하던 뜻을 중도에서 꺾임이라 / ! 천추만세는 내 슬픔을 알리라

현대 시들로 이루어진 이곳 시비군에서도 제주도와 우리나라의 역사문화가 묻어나는 더 많은 시비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제주의 다른 마을에서도 볼 수 있는 지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광대동산에서 광대(廣大)는 농악(걸궁) 등을 하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예인(藝人)의 별칭이다. 오래전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농악이 조직돼 영등굿 등 마을 축제에 흥을 돋우곤 했다. 광대놀이 하던 동산이 이곳에도 있었다.

도갓(都家)빌레는 공공장소 또는 공회당을 뜻하는 도가에 모여 마을의 관심사들을 의논했던 곳이다.

빌레는 곧바위를 뜻하니, 도갓빌레는 마을 공회당 주변에 있는 빌레지역을 일컬음이다.

망모루는 마을의 높은 지대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는 곳으로, 외적을 살피거나 잃은 마소를 찾기 위해 망을 보는 모루 즉 중요지점이란 뜻이다.

물미오름에는 관립망대를 두어 망을 보는 망직이를 배치했다.

명도암은 오현단의 향현사에 모신 김진용 선생의 아호로, 맹도암밧은 명도암의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을 일컫기도 한다.

제주역사문화 공유를 위해 적극 협조해주신 애월읍과 수산리에 감사드리며 대부분의 제주 마을마다 있었던 지명에 대하여 약술하며 수산리 편을 마무리한다.

 

다음 호부터 질토래비는 대정현의 역사문화가 깃든 길을 찾아 여정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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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2020-11-25 08:57:41
귀중한 자료 잘 봤습니다. 질토레비 활동을 적극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