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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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 수필가

싸늘한 기온이 몸을 에워싼다. 입동 지나고 소설(小雪)이 코앞이다. 밤새 이슬 먹었던 화초들과 눈을 맞춘다. 꽃잔디 진 지 오래되었고, 여름내 불타던 맨드라미도 제빛을 잃고 고개가 쳐지기 시작한다. 무서리에 견뎌 온 국화는 갈 빛으로 변해가는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휙 부는 바람에 감나무 잎이 떨어지자, 가슴 후비고 간 상념으로 먹먹해진다.

 

사도 요한을 먼저 하느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사십 년 넘은 지인들과 마음 나누는 단체 방에 뜬 문자였다. 아니야, 아직은. 갑작스러운 사고였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단체방 지인들도 온갖 상상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C 시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들을 먼저 보낸 L과 통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L의 딸 연락처를 메모에 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장례를 마친 후, 부모님과 공원에 나와 있었다. 마음을 억누르며 전화를 받았지만, 북받쳐 오르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여 통곡하고 말았다. 기침이 심해 응급실로 갔는데, 그때는 이미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틀이 고비라는 말을 듣고 무너지는 가슴을 어찌 쓸어내렸을까. 가족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3일 만에 황망히 떠났다.

이태 전 이맘때쯤 양구에 갈 일이 있어, L 댁에서 하룻밤 묵고 닭갈비까지 함께 먹었던 저녁 시간이 마치 어제 일 같았다. 일을 마치고 서둘러 식당에서 함께 했었다. 예전보다 몸이 좋지 않아 생활도 절제하고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노라고 했다. 할머니와 삼촌 그리고 고모들에게 희망이었던 손자였고 조카였기에, 더욱 애틋하고 아렸다. J 댁 종손으로 책임과 의무가 막중할 터였다.

요한이 떠난 지 몇 주 지났다. 잠시 우리 집으로 내려옴이 어떤지 손을 내밀었지만, 얼른 옆에 있는 남편을 바꾸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을지, 가뭇없이 가버린 요한을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웠지 싶다. L의 남편은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고,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애써 누르는 슬픔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인생의 초여름을 막 보내고 먼 길 떠난 요한. 다시 되돌아볼 수도, 되돌아올 수도 없는 그가 떠난 자리에 소슬한 바람이 일었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에 대한 통증은 뭉근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요한에 이어 갑자기 떠난 교우들이 있었다. 창문으로 얼떨결에 떨어진 사고, 한순간이었다. 애지중지 키운 딸은 의젓한 직장인이 되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었다. 꽃다운 나이였다. 그들의 봄은 너무 짧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그분께 바라고 또 바라는 것밖에는···. 11월은 가톨릭 전례로 위령성월(慰靈聖月)이다. 세상을 떠난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고 위로하며 기도하는 달이다. 그 너머 자기 죽음을 조용히 묵상해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동동걸음 걸었던 시간이 회한의 실타래를 풀었다 감았다 한다.

인디언 수우족 기도문에는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준다라고 했다. 영혼의 바람들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부활의 신앙을 믿고 있기에,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해거름 녘 동네 한 바퀴 돌고 왔다. 몇 개 남지 않은 감나무잎이 바람에 달랑거리고 있었다. 감나무는 단풍이 한창일 때쯤이면 까치밥 몇 개만 남겨둔 채, 빈 몸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늬바람 이겨내고 신록이 우거질 즈음, 감꽃은 청신한 아기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겠지. 자연의 순환은 어김이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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