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생존 수형인에게 첫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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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92세 김두황씨 재심 재판서 "검사 공소사실 입증 못해"
"이번 선고가 여생의 응어리를 푸는 출발점 되길 바란다" 위로
7일 김두황씨(92)가 제주지법 앞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씨의 딸(왼쪽)이 기자회견 중 흐느끼고 있다. 오른쪽은 오임종 신임 4·3유족회장 당선인.
7일 무죄 선고를 받은 김두황씨(92)가 제주지법 앞에서 소회를 밝힌 가운데 딸 김연자씨(63·사진 왼쪽)가 흐느끼고 있다. 오른쪽은 오임종 신임 4·3유족회장 당선인.

제주4·3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생존수형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7일 김두황씨(92)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4·3 당시 내란죄나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인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피고인은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부인했고,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는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관련 증거가 없어서 검찰도 무죄를 구형했고,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라 공소사실의 증명이 없을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별도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으로 개인의 존엄이 희생되고 삶은 피폐해졌다. 92세의 피고인은 그동안 하소연 한번 못하고 운명이라 여겼다. 이번 선고가 여생의 응어리를 푸는 출발점 되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신인 김씨는 경찰 지원조직인 민보단에서 활동했지만, 스무 살이던 194811폭도에게 좁쌀 1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장작으로 맞고 고문을 당한 김씨는 이듬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10개월 동안 수형생활을 했다.

김씨의 일반재판 판결문에는 남로당 명단에 포함됐다고 했지만, 이는 같은 마을 청년이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진술을 하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다.

김씨는 1949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귀향했다. 19508월에는 불순분자라는 이유로 예비검속을 당했지만 육군에 입대, 55개월을 복무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김씨는 중산간마을 소개령으로 해안마을로 가는 대신 마을에 성을 쌓는 등 민보단 활동을 했는데도 억울하게 잡혀갔다무죄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와 도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 김연자씨(63)재판을 받은 날마다 아버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살아 계실까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이런 날이 찾아와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편 지난해 1월 재판부는 생존수형인 18명에 대해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반해 무효일 경우 재판을 그대로 끝내는 공소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가 이번에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적법한 조사절차나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고, 판결문이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양민들을 강제로 연행한 후 고문과 취조를 하는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불법 체포와 구금도 주요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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