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와 회전교차로에서 배우는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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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우리는 자랑스러운 인쇄술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현존하는 세계최초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을 보면 우리의 인쇄술이 얼마나 오랫동안 발전된 것인지 알 수 있다. 1998년에 미국의 타임지는 지난 1000년 동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100가지 사건을 선정하였다. 타임지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1위로 선정했다. 구텐베르크는 요새 말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벤처 기업가였다. 그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하였고 또한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 면죄부를 인쇄해 사람들에게 팔았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는 대중에게 널리 책을 보급시키면서 유럽의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도 민간 기업이 주도하도록 과단성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표의문자인 한자는 책을 만들려면 1만 자의 글자가 필요했다.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고 숙련된 장인이 필요했다. 조선에서 주자소와 교서관 같은 국가관청이 금속활자의 제작, 인쇄, 출판, 유통을 담당했다. 주자소와 교서관이 인쇄하고 배포한 책은 사서삼경, 삼강행실도, 열녀전 같은 책들이었다. 주자소와 교서관은 인쇄된 책을 먼저 임금에게 진상하고 나서 중앙과 지방 관청에 배포했다. 표음문자인 알파벳은 26글자를 반복하여 조합하면 책이 만들어졌다. 유럽에서는 구텐베르크 이후 50여 년 동안에 4만 종의 책이 발간되고 인쇄소가 250여 개에 이르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중세 암흑시대를 붕괴시킨 반면에 조선의 금속활자는 군주제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우리의 세계 최고 금속활자는 정보혁명을 만들지 못했다.

도로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는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만나는 교차로이다. 신호등이 있는 십자교차로와 교차로 한가운데에 ‘섬’을 설치한 회전교차로 중에 어느 것이 더 안전할까? 답은 회전교차로이다. 회전교차로는 아무런 신호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운전자가 더 조심해서 운전한다. 회전교차로가 도입되자 교통 정체는 89%, 사고 발생은 80%, 사망은 70%까지 감소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더 안전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도로는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행동도 반영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24번째 발표한 대책에서 15조 원을 들여 앞으로 2년간 전국에 11만4000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빈 상가와 관광호텔을 주택으로 개조해 공공임대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임대주택 시장에서 공공임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다. 나머지 92%는 민간임대주택의 몫이다. 민간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지 않고서는 정부 단독으로 그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년 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채는 126조 원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상황에서 공공임대는 보완적인 역할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전세 대책을 발표한 날에 전국 아파트 값과 전셋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반응을 보였다. 행정당국이 시장개입을 줄이면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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