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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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녀 수필가

현관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기가 스며든다. 하나씩 떨어지는 열매를 주우며 모아놓다 보니 예상치 않게 풍기는 향이 제법이다. 열매 하나를 코끝에 갖다 대자 진한 향기가 배어난다. 깊은 호흡으로 들이마신다. 남쪽 창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볕, 그 사이로 감도는 그윽한 향내가 나를 편안하게 감싼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 않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 기운, 이 느낌은 무얼까.

아버지의 서재다. 남쪽 창으로 깊이 스며드는 볕으로 늘 다사롭고 안온했던 그곳. 지금도 친정에 가면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월요일 훈화를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문에서 필요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정리하셨고 한 권씩 늘어나는 스크랩북은 역사책이 되며 책장 한쪽 편에 나란히 꽂혀갔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크신 어깨 너머로 감돌던 쓸쓸한 느낌은 왜였을까. 늘 그러셨다.

어릴 적 살았던 꽃이 많던 마당 넓은 집. 아버지는 퇴근 후나 주말이 되면 넓은 꽃밭에서 백합뿌리를 나누어 심고 장미가지를 다듬어 주며 철따라 온갖 꽃을 가꾸셨다. 이른 새벽 교교한 달빛 아래 마당을 휘돌던 갖가지 꽃향기는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손길과 가만히 서서 꽃들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함께 하였다. 그때도 그러셨다.

울타리 옆에 자리한 나무는 해마다 꽃과 열매로 계절을 알려왔지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름도 요 얼마 전에야 알았다. 관목이지만 쑥쑥 뻗는 가지를 제때에 잘라주지 않으면 꽤나 성가신 터라 이 때다 싶어 다가간 내게 다닥다닥 달린 쪼그마한 열매들이 시선을 끄는 게 아닌가. 가위를 대려다 멈칫하여 나도 모르게 물었다. ‘대체 너는 누구니?’ 나로선 참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명자나무라고 한다.

명자 열매들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계절과 함께 노란빛으로 영글어갔다. 겉으로는 여려 보이나 꽤나 단단하고 매끄럽다. 땅에 떨어진 열매 하나를 줍지 않고 놔두었더니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그냥 있다. 지난여름 잘 익은 무화과 열매에 새까맣게 몰려들어 순식간에 먹어치우던 개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걸까.

참 잘했다”.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단 한마디였지만 칭찬의 정도는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힘들거나 속상한 일엔 돌아서서 아무 말 않고 기다려주시며 크게 야단 한 번 치신 적이 없었다.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시던 아버지는 평소에도 말이 없으셨다. 자제하신 걸까, 아니면 외롭게 자라면서 속내를 드러내는데 서툴렀던 걸까. 속으로만 삭이며 켜켜이 쌓은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어쩐지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분이셨다. 허나 우리는 잘 안다. 과묵한 성격 뒤에 있는 속정이 누구보다 살갑고 따뜻하시다는 걸.

손자들이 어렸을 적, 주말마다 모여들어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모습이었다. 어쩌면 유년기에 어머니를 여읜 당신의 허한 자리를 채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길을 착실히 걸어가는 손자들을 보실 수 없는 게 언제나 큰 아쉬움이다. 어쩌랴. 거스를 수 없는 섭리임을 알면서도 이따금 붙들게 되는 걸.

스며드는 향기를 깊이 음미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잎을 떨구는 가을 정원에서 명자나무도 길벗이 되어 동행할 채비를 서두른다. 이제 언 땅 밑에서 긴 호흡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겠지.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질문 하나가 들어온다. 나는 어떤 향기를 품고 사나, 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라는.

겨울로 접어드는 오후 하늘빛이 참 곱다. 내년엔 아버지가 심어주신 영춘화를 곱게 가꾸어 새봄을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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