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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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사랑의 묘약’이라고 하면 내가 반한 대상도 나에게 반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약으로 그려진다. 그 기원은 켈트족의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라고 하는데,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가 콘월의 왕과 결혼하게 되자, 딸이 왕의 사랑을 받게 하려고 이졸데의 어머니가 술 같은 형태의 사랑의 묘약을 만든다. 이졸데는 배를 타고 왕이 기다리고 있는 콘월로 가는 도중에 어쩌다가 왕의 조카 트리스탄과 함께 그 약을 마시게 된다. 강력한 약의 효과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나,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 결국은 가슴이 터져 죽고 만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인 줄거리를 이용해서 ‘모든 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꿈에 기념비를 세우고자’ 오페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도니제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인 사랑을 풍자적으로 모방하여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희극으로 바꿨다.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속인 약장수와 그것을 비싸게 사서 마시고 효능을 굳게 믿는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사랑의 묘약은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꽃의 즙이다. 잠자는 사람의 눈꺼풀에 이 즙을 발라두면 그 사람은 눈을 뜨고 맨 처음 본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묘약의 원료는 ‘삼색제비꽃’ 팬지, 그 심장 모양의 꽃잎에 마법 성분이 들어있다고 믿던 켈트족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현대에 사랑의 묘약은 옥시토신 호르몬라고 하는데, 옥시토신은 그리스 말로 ‘일찍 태어나다’의 뜻이며, 출산할 때 나오는 자궁수축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평상시에도 분비되고 친밀감을 유발하도록 작용하기에 일종의 ‘사랑의 묘약’이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처한 세상에서는 좀 더 광범위한 효력을 지니는 개량된 ‘사랑의 묘약’이 필요한 듯하다. 사회적 제도나 상식적 가치를 뛰어넘게 하는 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묘약은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널리 이용될 수는 없을 듯하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겠다는 소위 ‘다포’ 세대에게는 지나치게 센 약일 수 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이라는 신성한 광기는 적용되는 방향에 따라서 우리를 구원할 약이 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시들고 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작대기를 받칠 수 있으리라는 낙천적인 믿음이 있으면 어떠할까. 그러면 헛수고라고 미리 포기하는 대신 가능한 일들을 찾고 실행하는데 열기가 더 해질 것이다.

지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에 답답함이 짓누르는 우리 마음에도 아름다운 것을 심어주고 존재를 꽃피워내는 묘약이 필요하다. 지구 곳곳에서 장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하면 그들이 나를 전연 알지 못해도 그대로 흥이 난다. 주변과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줄 묘약은 우리들 마음이 따뜻이 데워질 때 생성될 것도 같다.

바이러스 감염증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실험에 자원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협조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젊고 건강한 성인들인데 의도적으로 SARS-CoV-2에 감염되어서 백신을 시험할 수 있도록 했다. 효과적인 백신을 빨리 개발하도록 도우려는 마음에서 이처럼 용감하게 젊은이들은 도전한다. 곤경에 처한 인류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바치는 셈이다. 이런 마음이야 말로 인류를 치유해 나가는 위대한 사랑의 묘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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