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여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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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국, 시인·교육학박사

‘바다여 말하라/ 우리의 아픔을/ 이 슬픔을 말하라/ 바다여 말하라/ 우리의 통곡을, 이 눈물을.’ 서귀포 출신 고(故) 김광협 시인이 남영호 참사 4일 만에 썼던 시의 앞부분이다. (제주신문 1970년 12월 19일)

필자는 지난 15일 ㈔서귀포예총 주관으로 10여 개의 서귀포 예술문화단체가 참여해 주최한 제1회 남영호 참사 추모예술제에 다녀왔다.

남영호 참사 50주년, 1970년 12월 14일 오후 서귀포항을 출발해 성산포항을 거쳐 부산항으로 항해 하던 중 조난을 당했다. 1970년 12월 15일 1시 27분, 한밤중에 바다에서 일어난 대형 해양사건이며 이 참사로 인명피해는 승객 338명 중에 323명이 사망 또는 실종자이니 살아남은 자는 고작 15명이다.

굳이 세월호 사건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인명피해로 보면 세월호를 능가하는 해양사고가 당시 제주 서귀포에서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화물은 주로 밀감 상자 등 적재량의 4배를 더 실었다니 애초부터 예견된 사고였다. 무지한 국내 해양행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분명한 인재임에도 요즘 젊은이들에게 남영호 참사라는 말도 그 의미를 모르고 피해 당사자의 유가족들도 이젠 지칠 대로 지쳐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누구하나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국 최대의 해양 사고였음에도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서 묻혀 가고 있으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대부분이 서귀포 시민이고 우리의 어머니·아버지·형님·누나들이며 그 후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내왔고 지금도 그 억울함은 계속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도민들이 알아야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역사적 진실은 잘 정리되고 남겨져 후대에 알리고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역시 어쩌면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묻히고 제대로 된 교육이나 기억을 하지 않았기에 일어났을 법도하다. 세월호도 인천에서 제주도로 항해하던 정기 여객선이 아닌가.

우리가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아름다운 관광지에서 슬픈 역사를 만나곤 한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하와이라는 아름다운 낭만의 섬에서 만나는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 상황, 그리고 펀치볼 국립묘지 등이 그렇다. 낭만의 섬으로만 알고 있는 이 섬에서 우연한 두 곳과의 만남은 슬픈 전쟁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으며 우리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 추모제를 기점으로 숙제가 많아지겠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남영호 위령탑 문제이다. 들리는 바로는 본래 서귀포항에 세워졌다는 남영호 위령탑이 어떤 이유인지 전혀 관련이 없는 돈내코 지경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정방폭포 주차장 근처로 다시 옮겨 세웠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서귀포항으로 제 위치에 세우고 동양의 나폴리라고 자랑하는 역사의 현장에 바로 세워서 서귀포를 찾는 사람들에게 관광과 연계해 알려나갈 수 있도록 행정당국이나 유족회 사회단체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이후의 문제는 관련 단체나 행정당국이 서귀포의 역사적 사료로 발굴,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다. 삼가 남영호 침몰 사건 희생자들의 명복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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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s 2020-12-21 10:18:36
서귀포에 가슴아픈 역사의 기억을 발굴해서 재조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3아픔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