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의 뿌리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의 뿌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거울의 역사는 인류의 문화사를 반영한다. 그것은 거울이 태고부터 자기인식 수단이었기 때문이며, 영어의 speculation(사색, 숙고)은 어원적으로도 라틴어에서 거울을 의미하는 speculum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 거울까지 포함하면 거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처럼 오래되었을 것이다.

최초의 거울은 고대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연못이나 시냇물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나르시소스(Narcissus)라는 아름다운 젊은이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그 형상을 안으려고 몸을 굽히다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196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터키 중부 카탈 후유크 (Catal Huyuk)에 여인 열 명이 묻혀 있는 무덤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울을 발견했다. 이 거울은 화산암인 흑요석 조각을 갈아 윤을 낸 것이었다.

기원전 2900년 무렵 이집트인은 청동이나 구리를 이용하여 거울을 만들었으며, 기원전 2800년 경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그와 유사한 것을 제작했다. 중국의 한() 왕조(기원전 202 서기 220)에서는 더욱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동거울을 만들었다.

최초의 휴대용 분갑이라고 할 수 있는 콤팩트(compact)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제작되었는데 작은 상자를 열면 그 내부에는 윤을 낸 금속거울이 있다. 금속이 변색되기 때문에 거울을 깨끗하고 선명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부 콤팩트에는 부석 분말을 묻힌 스펀지도 들어 있었다.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정적들이 자신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하고 암살자가 접근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방에 거울을 설치했다. 그렇지만 의외의 인물들에 의해 침실에서 암살당했다.

국보 제141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잔무늬거울)”은 고조선이 탄생시킨 뛰어난 청동거울이다. 이 청동거울의 뒷면에 촘촘한 가는 선으로 구성된 문양을 가지고 있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물 중의 하나이다. 이의 문양이 너무 정교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청동은 구리 합금 중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구리-주석계이다. 이것은 주석 함유량에 따라 기계적 성질과 색상이 변하게 된다. 구리의 색상은 붉고 주석의 색상은 희다. 주석의 비율이 높아지면 색상이 점차 황색에서 담황색, 백색으로 변화된다.

3세기경 로마인은 투명한 유리판의 한 면에 은이나 금, 구리를 얇게 입혀 투박한 유리거울을 만들었다. 상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 유리거울이 탄생했다. 그렇지만 이방인의 침입으로 로마제국이 몰락하면서 유리거울 제조 기술이 사라졌다. 이후 13세기가 되어서야 다시 유리거울이 등장했다.

조선에 처음 유리거울이 들어왔을 당시 그 인기는 대단했다. 양반들 사이에 거울이 뇌물로 쓰일 만큼 귀중품이었다. 이때부터 유리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이것은 유리 표면에 은 이온이 금속 은으로 변화하면서 달라붙는 은거울반응으로 만든다. 질산은 수용액에 포름알데히드 같은 환원제를 이용하면 은 이온이 환원되면서 은이 유리면에 달라붙는다. 때로는 좀 더 값이 싼 알루미늄 계열 염을 이용하기도 한다.

2020년 경자년(쥐띠)에는 인류와 지구가 고통에 신음하며 심각한 가슴앓이를 했다. 청동거울과 유리거울 보다 우리의 삶을 더 정밀하게 비춰주는 마음거울(心鏡, 심경)의 영상을 냉정하게 고찰·분석할 순간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비춰 온 마음거울에 묻어 있는 더러운 때를 지우고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이 명경(明鏡)을 통해 2021년 소띠해인 신축년에는 자신의 이상과 꿈, 영감을 더 잘 관리하여 멋진 열매를 수확하길 염원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