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은 필연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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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마당을 거닌다. 잿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무거운 듯 낮게 드리웠고, 코끝 시린 바람은 대문과 낮은 담장 위로 들락거린다. 마당 한구석에서 키우던 다육이들을 실내로 옮겨놔서 그런지 겨울이 번져 있는 마당이 오늘따라 더 썰렁하다.

지난 초여름, 집콕 생활이 따분해 다육이 화분을 여럿 들여놨다. 뭔가에 마음이라도 붙여야 작은 울타리 안에서의 하루하루가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물을 싫어하고 햇볕과 바람을 좋아하는 게 이들의 습성이라 했다. 다른 식물처럼 잘 자라라고 빈번히 물을 주다 보면 과습으로 인해 잎이나 뿌리에 무름병이 생겨 영영 이별할 수 있다는 조언도 새겨들었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육이 앞에 오도카니 앉아 밤새 아무 일 없었는지 살피는 게 일과가 되었다. 자람이 더뎌 그게 그거 같았지만 가끔 어제와 다른 변화를 찾았을 땐 귀인이라도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했다.

다육이와의 교감은 멈춤인 듯하다.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어 가만히 바라보는 게 그들과의 소통인 것 같다.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만화 영화 속 고양이처럼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쥐를 선물하는 시행착오는 없어야 한다. 관계란 상대의 입장에서 다가가야 하니까.

식물도 감정이 있다고 한다. 실험으로써 많은 연구들이 이를 밝히고 있다. 일본의 한 면역 전문가도 선인장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는 사랑스럽고 좋은 말을, 다른 쪽에는 나쁜 말과 욕을 들려주며 1년간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짐작하다시피 좋은 말을 들은 선인장은 싱싱하게 자라 꽃을 피우는 반면, 나쁜 말을 들으며 자란 것들은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시들어 죽었다 한다.

식물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인들 오죽할까.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칼에 찔리거나 교통사고로 인해 뼈가 부러지는 상태에서 느끼는 격렬한 뇌의 반응과 똑같단다. 한 번쯤 상대가 건넨 말에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게다.

역지사지라 했다. 혹여나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삐딱한 곁눈으로 흘겨보며 거르지 않은 말들을 내뱉고 있지는 않은지,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아니기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가슴 서늘함은 없는지, 내 안에 이타심이 잘 깃들어 있긴 한지 살펴볼 일이다.

어느 광고인이 쓴 광고 마케팅의 본질에 대한 글을 접했다. 코로나가 직격탄을 쏟아부어 모든 게 변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한다. 여전히 광고에서는 사람이고, 사랑이고, 고객이라는 것이다. 오프라인의 고객은 줄었지만 온라인의 고객은 살아있으므로 무대만 변했을 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상은 오직 사람이라 일컫는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에는 비 오는 날의 커피 향 같은 기분 좋은 냄새가 배어 있다.

냄새도 중독된다 했던가. 내로남불격인 이런저런 뉴스가 속 시끄러울 땐 가슴 따뜻한 기사를 물색한다. 누군가의 성공 신화에서 처음 그를 응원해 준 것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이에게 손을 내민 것도 스치는 인연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치유한다. 어느 때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작금이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화두는 공감에서 이끌어 내는 감동이 아닐는지.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처럼 평범한 것에 감동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외출과 외식이 일상인 평범한 2021년을 간절히 꿈꾼다. 간절함은 필연으로 다가온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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