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2명 배출…가장 티베트적인 곳
‘달라이 라마’ 2명 배출…가장 티베트적인 곳
  • 제주일보
  • 승인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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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동티베트 리탕(理塘)
해발 4100m의 고원 도시
16세기 창건 사찰 ‘리탕사’
문화혁명 때 파괴된 후 복원
달라이 라마 7세 생가 보존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명소
달라이 라마 7세 생가의 모습. 일반인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생가 앞에 인상 깊은 돌탑도 있고 주변에 찻집 등도 있다. 리탕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명소 중 하나다.
달라이 라마 7세 생가의 모습. 일반인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생가 앞에 인상 깊은 돌탑도 있고 주변에 찻집 등도 있다. 리탕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명소 중 하나다.

1950년 중국에 합병되기 전 원래의 티베트는 크게 세 지역으로 구성됐다. 서쪽 절반이 우창(U-Tsang, 卫藏), 나머지 절반인 동쪽은 다시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암도(Amdo, 安多)와 캄(Kham, 康巴)으로 불렸다. 이들 세 지역을 합친 면적은 현 중국 대륙의 4분의 1에 달할 만큼 넓었다.

티베트는 13세기 중엽 몽고에 점령된 이후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700년간 중국의 직간접 지배를 받았다.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독립을 선언했으나, 1950년 마오쩌둥의 공산당 정부에 다시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59년 티베트인들의 대대적인 반중국 봉기가 실패로 끝나고,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하자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동서로 분할하여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일부로서의 오늘날 티베트의 행정 명칭은 시짱(西藏)자치구다. ‘서쪽의 장족’ 즉 서티베트 인들의 땅이란 뜻이다. 1965년 서부의 우창 지역만 시짱이란 이름을 붙여, 티베트인들의 자치구로 인정해버린 결과였다. 이때 동부의 암도와 캄 지역은 칭하이, 깐쑤, 쓰촨, 윈난, 4개 성의 일부로 분할 합병되면서 이 지역 티베트인들은 천대받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해갔다.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가 오랜 세월 인도에 있었지만 중국의 철권통치 아래 티베트의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

옛 암도와 캄 지역을 뜻하는 동티베트라는 지명은 외래 여행자들이 그렇게 부를 뿐 중국 입장에선 금기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윈난성 리장과 샹그릴라 또는 쓰촨성 야딩 등의 동티베트 여행은 꽤 인기를 끈다.

지금의 쓰촨성 깐쯔 장족(甘孜藏族) 자치주의 리탕(理塘)은 티베트의 역대 14명 달라이 라마 중 두 명을 탄생시킬 정도로 옛 캄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 도시였다. 동티베트 지역에선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적인 분위기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여행지이다. 라싸보다도 더 높은 해발 4100m의 고원 도시라 고산증과의 싸움이 일반 여행자들에겐 큰 과제이다.

♣트레킹 루트(9.5㎞)=동성문(东城门)-(차량)–쳉두 게스트하우스(成都旅游招待所)-리탕사(理塘寺-장청춘커얼사(长青春科尔寺)-달라이라마 7세 탄생지(七世达赖喇嘛诞生地)-인강고옥( 仁康古屋)–인강고가(仁康古街)–천장터(天葬垈)-거싸얼왕 광장(格萨尔王广场)–단결로(團結路, Tuanjie Rd)–행복로(幸福路, Xingfu Rd)–백탑공원(白塔公园, Baita Park)-(차량)-서성문(西城门).

쳉두나 캉딩 또는 남쪽 따오청에서 리탕으로 들어갈 때는 시내 1㎞ 전방에 있는 관문을 지난다. ‘세계 고성(古城) 리탕’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쓰여진 ‘동성문’이다. 누구든 차에서 내려 인증사진을 찍게 할 만큼 관문의 자태는 위용이 넘친다.

리탕에 온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티베트 불교 사찰인 리탕사이다. 16세기에 달라이 라마 3세에 의해 창건된 겔룩파(格魯派) 또는 황교의 사찰이다. 밖에서는 잘 모르는데 안에 들어가보면 규모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장청춘커얼사로도 불리며 강남 황교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티베트 여느 사원들처럼 문화혁명 때 거의 파괴됐다가 1990년에 다시 복원됐다. 도심 북쪽 모라카산(莫拉卡山) 기슭에 위치한다. 도심에선 왕복 3㎞ 거리다. 고산 증세만 없다면 천천히 걷기에 아주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길이다.

리탕 마을 동티베트인들의 모습.
리탕 마을 동티베트인들의 모습.

중국 지배 하에서의 티베트 왕인 달라이 라마 제도는 지금까지 600여 년 동안 이어져왔다. 지금의 달라이 라마 14세가 독립을 추구하다 쫓겨나 인도에 망명한 지 60년이 흘렀지만, 80대 후반인 그가 다시 라싸로 복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역대 14명의 달라이 라마 중 동티베트 리탕 출신이 7세와 10세, 둘이나 된다. 리탕 구도심에는 달라이 라마 7세의 생가가 지금도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일반인이 들어갈 순 없지만 생가 앞에 인상 깊은 돌탑도 있고 주변에 찻집 등도 있다. 리탕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포탈라궁을 건립한 달라이 라마 5세는 중국으로부터 나름 독립적 지위를 확보한 후에 세상을 떴다. 6세로 왕권이 넘어오자 중국은 다시 티베트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묘책을 강구했다. 그런 와중에 중국이 자신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티베트 리탕 출신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라싸로 쳐들어가 왕좌에 옹립한 인물이 달라이 라마 7세이다. 그가 즉위 하기 전인 여덟 살 때 출가한 곳이 바로 이곳 리탕사이다.

그의 생가가 있는 주변 1㎞ 거리는 인강고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다. 빨간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는 티베트 전통가옥들이 즐비하다. 골목을 누비며 고즈넉하게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달라이 라마 7세의 생가 인당고가 거리 모습.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로 티베트 전통가옥들이 즐비하다.
달라이 라마 7세의 생가 인당고가 거리 모습.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로 티베트 전통가옥들이 즐비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쿤둔’에는 어린 달라이 라마 14세의 부친이 죽은 후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 섬뜩하게 그려진다. 넓은 고원 들판에서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이 경건하게 염불을 외고, 큰 칼을 든 인부들이 사체를 토막 내고 살점들을 잘라내 주변에 던진다. 하늘에서 내려와 기다리던 수십 마리의 독수리 떼가 무섭게 달려들어 살점들을 먹어 치운다. 뼈에 남아 있는 살점들도 하나하나 발라내고, 남은 뼈마저도 모두 잘게 분쇄한 후에 양념을 묻혀 뿌리면 주변 독수리들이 금세 먹어치운다.

하늘에 장례 지낸다는 의미에서 천장(天葬)이라 부른다. 육신을 독수리 먹이로 바치면 영혼까지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믿음 때문에 1000년을 이어온 티베트인들의 전통 장례 방식이다. 육신을 새의 먹이로 바친다 하여 조장(鳥葬)이라고도 한다. 건조한 티베트 고원에선 시신을 묻어도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이런 풍습이 생겨났다. 시신이 썩지 않으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러면 내세를 기약할 수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라싸의 세라 사원 뒤나 수미산 카일라스 입구 등 티베트 전역에 천장터가 많다. 이곳 리탕에도 유명한 천장터가 있다. 인강고가 오거리에서 북서쪽 길을 따라 1.5㎞ 지점에 위치한다. 장례가 매일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숙소에 문의하면 그날 장례 여부와 시간을 알려준다. 여행자 누구에게나 난생 처음 보는 괴기스런 현장이겠지만 장례를 치르는 가족 등 티베트인들에게선 슬픔보다는 망자를 좋은 곳으로 잘 보내고 있다는 안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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