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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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김현승의 <눈물>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는 과정을 쓴 시다. 시 속의 화자는 ‘눈물’을 ‘작은 생명’, ‘나의 전체’,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이라 빗댔다. 눈물 곧 생명이고 전체이면서 마지막까지 지녀야 할 무엇이라 환기한다. 신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이면서 생명적인 표상으로 눈물의 층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눈물은 슬픔의 산물이지만, 그것으로써 신 앞에 겸손해져야 함을 일깨운다.

노(老)학자 이어령 씨. 어느 날 마루에 쭈그려 앉아 발톱을 깎다 툭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한다. 이제 멍들고 이지러져 형체 없이 지워진 새끼발톱이다. 그 가엾은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와락 회한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이 무겁고 미련한 몸뚱이를 짊어지고 80년을 달려왔단 말이냐. 얼마나 힘들었느냐. 나는 어찌해 이제야 네 존재를 발견한 것이냐.”

한번은 햇볕 내리쬐던 어느 가을날, 그는 집 뜨락에 떼지어 날아든 참새를 보았다. 어릴 적 동네 개구쟁이들과 쇠꼬챙이에 구워 먹던 새였다. 이 작디작은 생명을, 한 폭의 ‘날아가는 수묵화’와도 같은 저 어여쁜 새를 뜨거운 불에 구워 먹었다니…. 종종걸음치는 새를 눈길로 좇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썼다. ‘시든 잔디밭, 날아든 참새를 보고, 눈물 한 방울.’

이어령 씨는 시인·문학평론가이면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 시대의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큰 산 같은 분. 급변하는 시대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해 온 분이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 연출자로 유명하다. 수십만 관중과 수십억 세계인의 눈이 살처럼 꽂힌 현장, 채를 잡고 굴렁쇠 슬슬 몰고 큰 운동장을 돌던 장면이 떠오른다. 굴렁쇠는 인류가 하나 돼 나아가자 한 초월적 메시지였을 것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울려 퍼지던 환호성이 되살아난다.

이어령 선생, 그분은 올해 세는 나이 88세다.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체중이 50㎏으로 내렸다 한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에 몰두해 온 그는 견뎌낼 수 있는 날이 한 달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끝까지 끌어안던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일주일에 한 번 기(氣) 치료만 받는다는 그가 “심심할 때마다 병상에서 끄적였다는 낙서장에, 시 같고 짧은 산문 같은 글들이 적혀 있단다. 일기 쓰듯 매일 낙서하다 ‘눈물 한 방울’이라는 다섯 글자를 떠올렸다.”고 한다. 실존이 맑은 영혼과 해후해 교감한 걸까.

‘눈물 한 방울’은 외로운 병상에서 사위어 가는 한 노인의 푸념이거나 넋두리가 아니다. 혼돈의 시대에 ‘디지로그’, ‘생명 자본’ 같은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해 온 이 석학은, 코로나19로 온 인류가 절망과 신음에 휩싸여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화두를 ‘눈물 한 방울’로 함축한 것이다.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다. 타자를 위해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온기가 담긴 눈물이다. 이제 우리는 피와 땀의 논리로 생존할 수 없는 시대의 막장 앞에 와 멈칫거리는 게 분명해졌다.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뜨겁고 인간적인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우리를 비웃고 있지 않을까. 덜떨어진 과학이, 우매한 문명이 한낱 미물에 마구 휘둘리고 있잖은가. 작은 생명, 나의 전체,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이다. 주루룩 흐르는 내 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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