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과 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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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1949년 1월 17일 아침. 구좌 세화리에 주둔한 2연대 3대대 병력 일부는 대대본부가 있는 함덕으로 가던 중 북촌마을 고갯길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숨졌다.

마을에서 군인이 사망하자 당황한 원로들은 시신을 들것에 실어 함덕 대대부대로 찾아갔다. 흥분한 군인들은 10명의 연로한 주민 가운데 경찰가족 1명을 제외해 모두 총살해 버렸다.

이날 오전 11시쯤. 2개 소대 병력이 북촌마을을 덮쳤다. 군인들은 가옥에 불을 지른 후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주민들을 몰아넣었다.

이어 기관총으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런데 한 장교가 이런 제한을 했다. “입대한 후에도 적을 사살하지 못한 사병들이 있다. 경험도 쌓을 겸 몇 명씩 끌고나가 총살을 시키자.” 이 학살 방법이 채택됐다.

주민들은 30명씩 나뉘어 동쪽과 서쪽의 들녘인 너븐숭이(넓은 돌밭)로 끌려가 희생됐다. 학살극은 겨울 해가 넘어가는 오후 4시쯤 지휘관의 중지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됐다.

북촌주민 학살은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446명이 희생됐다. 집안마다 후손이 끊기면서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렸다. 엄마 품에서 죽은 어린아이 10여 명은 한곳에 모아 돌무더기를 쌓았다. 너븐숭이에 있는 돌무덤을 ‘애기 무덤’이라 부르는 이유다.

지난해 4·3사건 재심 청구에서 생존 수형인 7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행방불명 수형인 325명에 대한 재심 본안 재판도 마무리되면서 향후 무죄 선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북촌마을 희생자에 대해선 지금껏 재심 청구나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가 끊겨 생존 유족이 드문 것도 한 이유이지만,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반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미군정기와 정부 수립,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한 종합보고서를 2010년에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희생자 신원과 희생 경위, 가해자와 가해자 소속 부대, 시신 수습 여부, 2차 피해 등 철저히 사건 위주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가해자에 대한 법적·정치적 조치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지난 연말 정부와 여당은 4·3희생자와 유족들에게 2022년부터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8일 종료되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불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위자료’라는 표현으로 실질적인 배상을 담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민주당의 개정안에 대해 “배·보상이면 배·보상이지 위자료는 뭐냐”며 반발했다.

4·3 관련 단체의 입장도 엇갈린 상황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명분보다 실리를 위해 정부와 여당의 합의안에 동의했다.

반면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정부는 국가폭력에 대한 배·보상 원칙을 존중하고 실천하라며 수정을 촉구했다. 제주4·3연구소도 국가는 희생자에게 적절하게 보상하고, 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한다며 위자료 지급에 반대했다.

이처럼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의 입장 차가 여전해 새해 임시국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불법 체포와 가혹 행위, 집단 학살로 희생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위자료와 배·보상을 놓고 소모적인 다툼보다 4·3유족에게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완전한 명예회복, 그리고 국가에 의한 피해 보상만이 미완의 4·3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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