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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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농업인·수필가)

 

아줌마는 힘이 세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햄릿류()’의 편견을 깨부수고, ‘대한민국 아줌마로 환골탈태한 그녀들이, 삶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빈다. ‘쇠심줄처럼 강인한 전사(戰士)가 되어,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파(世波)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나가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물론 갑 중의 갑의 권위로 군림한다. ‘마초처럼 군림하던 남편도, 아줌마로 표변(豹變)한 아내의 위세에는, 뻣뻣이 세웠던 꼬리를 슬그머니 내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녀들이 무리를 이루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신화 속 여성 무사족(武士族)아마조네스처럼 천하무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줌마 부대가, 겨울날의 여명(黎明)에 우리 농장으로 진주(進駐)했다.

서로의 경조사를 제 일처럼 챙기고, 수눌음으로 상부상조하며 다져 온 끈끈한 연대. 농한기에는 여행과 고스톱을 함께 하며 친자매들처럼 지내는 동네 아줌마들이, 아내의 수눌음에 대한 보답으로 레드향 수확을 도와주러 온 것이다. 겹겹이 옷들을 껴입은 데다, 아랍의 탈레반전사들처럼 눈만 빼꼼히 내놓고 있어서, 처음에는 애당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인사를 건네오는 목소리로 대충 짐작은 갔지만, 청일점(靑一點)의 머쓱함으로, 감히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녀들의 작업 능력은 탁월했다. 곡예사들처럼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오르내리며, 발갛게 익은 열매들을 따서 바구니들에 담았다. 그러면서 지친 기색들도 없이, 유행가 가락에다가 장강(長江)처럼 이어지는 수다를 떨었다.

그녀들의 수다는, 동네 청문회의 다른 이름이었다. 수많은 이웃들이 불려 나왔고, 시시비비를 따져 심판을 받았다. 특히 동네 남정네들에 대한 단죄는, 서릿발처럼 단호하고 엄정했다. 주로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가장들이 줄줄이 소환되었는데, 급기야는 그녀들의 남편들도 청문회를 피할 수 없었다. 남편들이 온갖 죄상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단죄의 판결들이 줄을 이었다. 일찌감치 남편을 포기했다며 한숨짓는가 하면, 나이 들어 힘 떨어지면 수발은 차치하고 요양원에 강제 입소 시키겠다며 이를 갈 기도 했다. 으름장에 겁먹어 요양원보다 차라리 생매장해달라고 했다는 어느 집 남편 이야기에는, 잠시 일손을 놓고 박장대소하며 난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함께 일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녀들의 면전(面前)에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동네 남정네들에 대한 평가들을 엿들으며 내내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녀들의 청문회에서, 과연 나는 어떤 죄목으로 그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까. 아내는 그런 자리에서 나를 변호해 주고 있을까. 갑자기 아내가 낯설고 무서워졌다. 아내도 동네 아줌마 부대의 일당백(一當百) 대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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