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를 세워 토관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다
향교를 세워 토관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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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대정향교
1420년 세종 2년 처음 설립
이후 명륜당·대성전 등 중건
갑오개혁 후 교육기능 상실
석전제와 분향 주로 행해져
道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
과거 대정향교의 모습.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석전제와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행하고 있다.
과거 대정향교의 모습.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석전제와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행하고 있다.
대정향교 전경. 대정향교는 제주도 내 3개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정향교 전경. 대정향교는 제주도 내 3개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416년부터 들어선 대정현은 조선시대 최악의 유배지로, 일제강점기에서는 군사기지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있었던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지닌 곳이다. 대정고을에서의 교육에는 유배인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바, 여러 장에서 유배인들에 의한 교육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질토래비 여정에서는 대정현에서의 향교와 서원의 발달과 근대 학교의 출현 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정현·정의현·제주목에 향교가 서기까지

‘제주에는 학교가 없어 토관들이 글을 모르고 법제를 알지 못하여 대개 어리석고 방자하여 작폐가 심하므로 교수관을 두어 10세 이상의 토관자제를 교육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조선이 개국하는 해인 1392년 제주향교가 다른 지역보다 일찍 개교했다. 

고려시대부터 17현으로 나눠져 있는 제주행정체계가 비효율적이라 해, 제주목사 오식이 1416년 행정체제 개편을 조정에 건의한 후 제주는 3읍으로 개편돼, 정의현과 대정현이 설치되고, 1읍 1교의 원칙에 따라 현에도 향교가 설립됐다. 

향교의 배치구조는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 선현의 문묘를 모시는 동·서무, 공부방인 명륜당, 기숙사인 동재·서재 등으로 이루어진다. 

제주향교는 세워질 당시 지금의 중앙로인 교동에 있었으나, 여러 번 옮겼다가 지금의 용담동에 이건해 위치하고 있다. 

대정향교는 1420년(세종 2) 대정현성 성안에 세웠다가 1653년(효종 4)에 지금의 단산 자락으로 옮겨졌고, 정의향교는 1420년 성산읍 고성에서 문을 열었다가, 읍성이 성읍으로 옮기면서 향교도 옮겨졌다. 

향교의 학생수는 제주목에 90인, 대정현과 정의현에 각각 30인을 두도록 하였으나, 대개 그 수를 초과했다. 초과된 이유 중 하나로는 학생으로 등록되면 균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고, 성적이 좋은 자에게는 역을 감해주었기 때문이다. 향교에 출입한다는 자체가 특권의 상징이었으며 향직을 유지하는 수단이 됐다. 향교의 교육은 제주목에는 교수관을, 대정현과 정의현에는 훈도를 두어 실시했고, 운영경비는 국가에서 지급된 토지와 노비로 충당했다.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정향교

대정향교는 1420년 대정현 북성 안에 처음으로 건립됐다. 그후 북성에서 동성 밖과 서성 안으로 옮겼다가 1653년 이원진 목사 때 장소가 협소하다고 해 단산 아래로 이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후 1669년 제주목사 이희룡과 1752년 대정현감 이희춘이 중수하고, 1772년 대정현감 이빈은 명륜당과 전사청, 서재를 중건하고 1835년 장시열 대정현감이 대성전을 중건했다.

명륜당 편액은 1811년 변경붕 대정현감이 주자의 글씨를 본떠 편액해 게시했고, 향교의 기숙사 격인 동재의 현판인 의문당은 대정 출신인 훈장 강사공이 추사 김정희에게 청해 게시했다. 의문당의 원본은 현재 추사기념관에 보관해 전시 중이다. 남쪽에 명륜당이 북향해 자리잡고 북쪽으로는 마당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돼 있다. 

현재 대정향교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신삼문, 정문, 대성문 등이 있다. 전면에 강학공간인 학당을 두고, 지대가 높은 뒤쪽에 배향공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밖으로는 외담이 둘러져 있고 동남쪽과 서남쪽에는 각각 동정문과 대성문이 있는데, 문을 들어서면 북향의 명륜당과 만난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좌우에 4성위(안자·증자·자사·맹자)를 모시고, 동·서무에는 각각 송조 4현과 한국의 18현을 모셔 모두 5성 22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삼강오륜을 상징하며 1811년 강사공이 대성전 뜰에 심었던 소나무들과 팽나무들은, 자연재해와 관리소홀로 거의 고사됐다. 마당 북쪽에는 대성전으로 가는 신삼문이 있고, 향교 뒤로는 단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으로는 너른 벌판이 펼쳐지고 있다.

대정향교가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향교마을 입구.
대정향교가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향교마을 입구.

대정향교는 제주 3교의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1971년 8월 제주도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4월부터 문명학원을 병설해 운영하고 있다. 

소장된 전적으로는 대정향교절목 등 18종 37권이 있는데, 유교경전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국가로부터 전적과 노비 등을 지급 받아 훈도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봄·가을 석전제와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운영은 제주도향교재단에서 맡고 있다(전교 1인, 당의 9인). 

최근에 대대적 보수공사가 시행돼 단청도 새롭게 했으나 전체적으로 원형의 비례가 크게 달라져 있다는 평이다. 명륜당은 1772년 중건된 건물로, 정면 5칸 전후 좌우 퇴로로 된 평면의 굴도리집이며 장식이 간결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강건한 느낌을 준다. 

제주도는 대정향교의 대성전과 명륜당을 대상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로 추진 중이다. 

대성전은 공자 이하 성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의식이 치러지는 향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를 지녔다.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대정향교는, 대정현과 비슷한 소도시 지역의 대성전들이 정면 3칸 규모를 갖는 것과 비교할 때 비교적 큰 규모로 지어졌다.

대정향교의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우측에 동재 좌측에 서재를 배치한 전당후재의 배치형식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조성돼 있으며 퇴칸으로 4면을 둘러싼 매우 독특한 평면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국 향교의 명륜당 중 유일하게 우진각 지붕을 가진 건물로, 세부양식과 가구법 또한 대정지역의 인문,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듯 소박하고 절제된 유교 건축물의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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