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당기고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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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가진 나이에 숫자 하나를 더 얹었다. 매년 이맘때면 해야 할 일과 한 일, 그리고 하고픈 일을 정리해 본다. 육십여 년의 세월을 딛는 동안 이렇게 산다 해서 크게 달라질 바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간이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비슷한 일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연배가 비슷한 이들끼리 공유하는 또래문화는 같이 지낸 시간과 생각, 성향의 정도에 따라 친밀감은 깊어진다. 거기서 오는 편안함은 덤이다. 몇 해 전, 이렇게 뭉쳐서 퇴색한 지 오래나 환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함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인천공항에서 김포로 이동하여 항공시간 대기 중이었다. 여행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피로가 밀렸다. 혼잡이 덜한 쪽에 자리를 잡고 퍼질러 앉아 있을 때였다. 일행 중 누가 ‘우리 뭐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지친 와중에도 같은 생각들이었는지 그러자며 입을 모았다.

한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우리 몇몇은 음식을 주문하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훅훅 사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는데 우리는 마냥 밀리고 있었다. 직원에게 주문을 하려는데 매장 직원이 기다랗게 서 있는 기계를 가리키며 저기서 주문하고 오라는 것이다. 그 당시 이름마저 생소했던 키오스크. 낯선 기계 앞에 섰으나 쓸 줄을 몰랐다. 난감했다.

요즘은 여기저기, 심지어 버스 정류장까지 쓰임이 확대되어 편리하게 쓰이지만 그때만 해도 낯선 물건이었다. 사용해 본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터였다. 고작해야 현금인출기나 공항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한 항공권을 발권했던 경험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음식을 사기 위해 돈을 들고도 못 샀던 황당함이라니. 한참 후 매장이 한가해지자 어정대는 모습을 본 직원이 선심 쓰듯 주문을 받아주던 기억이 있다. 내 돈 주고 먹던 음식 맛이 그렇게 떫을 줄이야.

코로나 19로 일상생활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대면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과의 접촉이 점점 버겁게 되자 키오스크를 쓰는 곳이 많아졌다. 별것도 아닌데 쓸 줄 모르니 별것이 되고 만 셈이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 배우자니 성가시고 귀찮은 생각에 ‘여태 잘 살았는데’ 하는 자위적 생각에 애써 외면하려 했던 탓도 크다.

올해는 그런 기기들과 친해 볼 참이다. 이미 일상 속 많은 부분 광범위하고 또, 편리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며 소외감도 들었다. 먼저 활용이 서툰 휴대폰의 기능 익히는 것을 1순위로 올렸다. 사소한 것에서 밀릴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은 배워 볼 참이다. 그다지 필요치 않다고 여겼던 것들은 필요 않은 게 아니라, 사용할 줄 몰라 그 편리성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만치 밀려있었던 여러 기능들을 이제 일상으로 당겨 볼 생각이다.

크게 어렵지 않아 기능 하나씩 익히니 활용이 가능해졌다.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알고 나니 편리 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요망지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나이 언저리에서 무심히 지날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익힌 덕에 색다른 즐거움도 함께 누린다. 이런 소소한 것들은 문화와 편리함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까지 허용했다.

육십 넘게 그런 것을 안 해도 잘 살았다며 가당찮게 뻗대기 전에 일상의 문화로 다가서는 한해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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