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중죄인 벌하기 위한 대표적 유배장소였던 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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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도 땅이 척박해 생활 형편이 피폐했던 곳
추사 김정희 이곳에서 유배문화 꽃피워
대정읍성 성곽.
대정읍성 성곽.

1414(태종 16) 안무사 오식의 건의로 제주섬 서쪽에 대정현, 동쪽에 정의현이 설치됐다.

대정읍성은 대정현이 들어선지 2년 후인 1418(태종 18) 대정현감 유신이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했다.

대정현은 제주에서도 땅이 척박해 생활 형편이 피폐했던 곳으로 중죄인을 벌하기 위한 대표적인 유배지로 꼽혔다.

조선시대 500년간 제주에 유배를 온 260여 명 중 당대의 정치 거물과 대학자는 49명이다.

이 중 당파 싸움에 휘말렸거나 왕권을 비판·견제했던 34(69%)이 대정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대정현에서 유배문화를 꽃피운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있다. 안동 김씨 세력의 정치 음모에 휘말린 김정희는 36대의 곤장을 맞고 죽음 직전에 풀려나 유배됐다. 추사는 1840년부터 1849년까지 9년간 이어진 유배기간에 서예사에 길이 남을 추사체를 완성했다. 자신의 신세를 빗댄 그림 세한도는 국보 180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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