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뜨고 나무는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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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불교와 물리학을 연구하다 퇴직한 모 교수님께, 불교에 관한 강의를 부탁하였더니 거절하며, “10년 정도는 더 연구하고 강의하겠다”고 하셨다. 수강자가 일반 대중이니 쉽게 강의하실 것을 강권해 보았지만, 끝내 거절하셨다.

사실 나도 불교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부터 불전번역 등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을 읽어보았기 때문에 그저 문외한은 아니지만, 어찌 그 경지를 알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외우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단순한 정보나 상식 따위는 자연스럽게 기억되지 않는 한 굳이 외우려들지 않는다. 반면 없는 것을 찾는 것에는 흥미가 많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수학과목을 좋아했다.

성향이 그러함에도 굳이 인문과학을 하게 된 것은 사람들과 서로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버님께서 권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어려서는 사람이 좋아 사람을 쫓아다녔지만, 선생이 된 후로는 책을 보며 홀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코로나가 창궐하여 모든 것이 막혀버린 지금, 누구보다도 잘 지내고 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의 성향 때문에, 결국 인문학 중의 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음운학을 하게 되었고, 우연이었는지 필연 같은 우연이었는지 모르나, 어렵다는 불교를 만나 철학까지 도전하고 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내가 아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만 알고 있는 것도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것이 나만 알고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옛날에는 신문이나 책 등에 글을 남겼지만, 지금은 화상으로 강의를 남길 수도 있다.

요사이 난 자주 유튜브 강의를 듣는다. 산보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듣기도 하지만, 어떻게 강의할까를 고민하면서 보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이의 강의를 보았다. 그는 평소 입만 벌리면 거짓되고 현란한 말솜씨로 남을 현혹하곤 하지만, 일생 동안 발표한 글은 겨우 몇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고, 그것조차도 남의 글을 베끼거나 오류투성이이지만, 꼴에 학자랍시고 폼을 잡고는 한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는 안했지만 그렇다고 저처럼 대중을 향해 틀린 말을 함부로 내뱉는 줄은 몰랐다. 저 자도 교수, 나도 교수이니, 듣는 내가 창피하다. 수강하는 분들은 그래도 좋다고 듣고 있으니, 바보들의 말잔치인가?

학생 때 정의랍시고 떼 지어 몰려다녔거나, 심지어는 프락치 노릇까지 하였지만 어쩌다 교수가 되고, 교수가 되어서는 사교랍시고 하루가 멀다하게 술잔치만 벌여도, 한 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다. 저런 자가 어떻게 교수가 되었을까? 하기는 비서실에 근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은인을 만나 교수가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저런 자들 때문에 부끄러움은 훌륭한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몫이 되고 만다.

강의는 틀리더라도 저 혼자 창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탁월한 선동술로 권력자가 되고 비굴한 노예근성으로 나팔수가 되어, 온 사회를 농단하며, 부모덕에 의사되어 수술을 하거나 불의하게 진단서를 떼어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더라도, 저들의 동료이고 자식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해야겠는가?

윗자리에 앉아 현인을 욕되게 하고 온 사회를 망치는 멍청이들, 너도 그들과 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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