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땅끝 마을…마젤란의 지도를 채우다
남미 땅끝 마을…마젤란의 지도를 채우다
  • 제주일보
  • 승인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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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칠레 푼타아레나스
제주도 열 배의 광대한 도시
마젤란 지난 좁은 해협 유명
마젤란·살레시아노 박물관
예쁜 정원 같은 공원묘지도
도심에서 가 볼 만한 명소

 

마젤란 해협 앞 방파제 거리. 인류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통과한 남미대륙 맨 아래 지역의 좁은 해협이 바로 이곳이다.
마젤란 해협 앞 방파제 거리. 인류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통과한 남미대륙 맨 아래 지역의 좁은 해협이 바로 이곳이다.

 멕시코 일대의 아스텍 제국을 강탈했다. 침략자들이 퍼트린 천연두로, 면역력 없던 원주민 인디오들이 영문도 모른 채 수백만 죽어갔다. 다시 10년이 지난 1532년, 이번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남미 대륙의 거대 제국 잉카를 무너트렸다. 인구 1000만이 넘는 대잉카 제국이 이백 명도 안 되는 스페인 용병들에게 단숨에 짓밟힌 것이다.      

40년 시차를 두고 신대륙에 나타난 세 인물이 이후 500년 세계 근현대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세 인물 모두 스페인 사람이거나 스페인 왕조의 지원을 받은 이들이었다. 여기에 한 명이 더 추가돼야 한다. 인류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 에스파냐 항구를 떠난 지 1년 만인 1520년 11월, 그가 남미대륙 맨 아래 지역의 좁은 해협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오늘날의 둥그런 세계지도가 완성될 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가 통과한 좁은 바닷길을 ‘마젤란 해협’이라고 불렀다.

칠레는 모두 15개 주(州)로 이뤄진 나라다. 주를 표기한 칠레 지도를 보면 기다란 오이가 크고 작게 열다섯 동강 난 모습이다. 이들 중 남극과 대면하는 맨 아래쪽 주(州)의 이름은, ‘마젤란’의 스페인식 발음인 ‘마가야네스(Magallanes)’다. 그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간 500년 전 일이 이 지역과 좁은 해협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마젤란 해협이 관통하는 일대는 마가야네스 주의 주도(州都)인 푼타아레나스다. 영어로 ‘모래언덕(sand point)’이란 의미다. 칠레의 남쪽 땅끝인 이곳은 2015년 여름, 우리나라 MBC ‘무한도전-배달의 무도’ 편에서 개그맨 박명수씨가 지구 최남단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푼타아레나스 전체는 제주도 열 배인 광대한 면적이지만 가로 세로 6×2㎞ 정도의 다운타운 정도만 2, 3일 머물며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쉽지 않은 남미여행 도중에 잠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 된다. 

도심 복판인 아르마스 광장을 기준으로 시내 주요 지역들을 둘러보며 이틀 동안 15㎞ 동선을 걷는 것이다. 코스가 직사각형 모양이라 결국은 다시 광장으로 회귀하게 된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페르디난드 마젤란 동상. 동상 아래에는 두 거인이 영웅을 호위하고 있다.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페르디난드 마젤란 동상. 동상 아래에는 두 거인이 영웅을 호위하고 있다.

트레킹 출발점인 아르마스 광장에는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자 마젤란의 동상(Monumento Hernando De Magallanes)이 서 있다. 배 위의 대포를 딛고 서서 대양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동상 아래쪽으론 거인 둘이 큰 칼을 들고 앉아 영웅을 호위하고 있다. 둘 중 한 명의 오른발은 금빛을 띠며 거울처럼 반들거린다. 관광객들이 너나없이 손으로 만져온 탓이다. 빅 풋(Big Foot)이란 이 발을 만지면 소망하는 뭔가가 이뤄진다거나 다시 이 곳에 오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마젤란 일행이 이곳에 당도해 만난 원주민들은 동상의 두 호위병처럼 큰 발을 가진 거대한 몸집들이었다. 마젤란의 유럽인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했고 소수였지만, 말과 총과 갑옷과 대포 그리고 영악함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들 앞에서 원주민들은 몸집만 컸지 순한 양일뿐이었다. 처음에 거인들 모습에 놀란 마젤란 일행은 그들을 ‘발이 큰 종족’이란 뜻의 ‘파타곤(Patagon)’이라 불렀다. 이 지역 이름인 ‘파타고니아(Patagonia)’의 기원이 되었다.

▲트레킹 루트 (15㎞): 아르마스 광장-마젤란 박물관-신라면 집(Koko-men)-살레시아노 박물관-공원묘지(Cementerio Municipal Sara Braun)-마젤란 대학교-쇼핑몰 조나 프랑카-로칼 맥주 아우스트랄 양조장-십자가 언덕 전망대-메르카도 시장-시계탑(Reloj Del Estrecho)-코스타네라

푼타아레나스 도심에서 가볼 만한 박물관은 두 군데다. 아르마스 광장에 인접한 마젤란 박물관, 그리고 조금 떨어진 살레시아노 박물관이다. 전자에선 마젤란 관련 자료들 그리고 마젤란 해협이 발견된 이후의 이 지역 변화상을 보여주고, 후자는 이 지역 원주민들의 생활상과 자연환경에 관한 전시물들이 많다. 1㎞ 떨어진 두 박물관 사이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이 있다. ‘코코멘’이라는 상호보다는 ‘신라면 집’으로 많이 알려진 이곳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겐 특히 인기가 많다. 좁은 식당의 사방 벽에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남긴 메모 글들로 빼곡하다.

남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회자되는 공원묘지 ‘Cementerio Municipal Punta Arenas’.
남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회자되는 공원묘지 ‘Cementerio Municipal Punta Arenas’.

푼타아레나스 공원묘지는 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묘지로 회자된다. 특이한 모양의 거대한 조경수들이 잘 다듬어진 채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묘지라기보단 아름다운 정원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넓은 묘지 땅의 기증자인 사업가 사라 브라운의 이름을 공원묘지 이름에 넣었다.

아르마스 광장 인근 십자가 언덕은 도심 전체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영순위 명소다. 세계 각지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여러 이정표들 중에서 ‘대한민국 평창까지 12,515㎞’라는 표기에 특히 눈길이 가게 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마젤란 해협 해안을 따라 걸을 차례다.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메르카도 시장을 둘러본 후 해안선을 따라 도심 쪽으로 향한다. 부둣가 한편에 녹색 시계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다. 이곳이 번영을 누리던 100년 전, 독일에서 수입해 와 세웠다고 한다. 찬란했던 옛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듯 짠한 여운이 묻어난다.

15㎞ 도시 트레킹의 종점은 코스타네라다. 낡고 쓸모없어진 나무다리가 바다 멀리까지 나아간 모습이 극적이면서 아련하다. 아주 오래전 배에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이들이 들락거렸을 법하지만 지금은 흉물의 모습으로 옛 영화를 반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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