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뜨르비행장서 암매장 4.3행불인 74명 재심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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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43행불인 74명 유족 재심청구 받아들여 향후 정식재판 진행
2008년 제주국제공항 남북 활주로 인근에서 제주4·3사건 당시 총살돼 집단 암매장된 유해를 발굴한 모습.
2008년 제주국제공항 남북 활주로 인근에서 제주4·3사건 당시 총살돼 집단 암매장된 유해를 발굴한 모습.

제주4·3 당시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과 대전 골령골에 암매장된 행방불명인들의 재심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4·3행방불명인 74명의 유족의 재심 청구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법원의 재심 결정에 따라 이들 74명은 73년 만에 정식 재판이 열린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출신으로 신엄초등학교 교사였던 고(故) 문기호씨(당시 24세)는 1949년 퇴근 후 군경에 붙잡혀 제주경찰서로 끌려갔다.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고인은 2018년에 제주공항 유해 발굴 사업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도내에서는 4·3사건 귀순자와 좌익 전향자, 요시찰인 등에 대한 예비검속이 실시됐다. 아울러 공무원과 교사, 농부, 학생, 부녀자까지 검거됐다.

4·3사건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군경은 1950년 8월 4일 제주경찰서와 주정공장에 수감된 500여 명을 제주항으로 끌고 간 후 화물선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서 수장시켰다.

두 번째 집행은 1950년 8월 19~20일 제주북부(제주읍·애월면·조천면) 예비검속자 300여 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들은 제주공항 인근 구덩이에 끌려 간 뒤 집단 총살을 당하고 암매장됐다.

서귀포 3면(서귀·중문·남원면) 예비검속 희생자 82명은 1950년 7월 29일 계엄사령부 지시로 군용 트럭에 실려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이들은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유해 신원 확인을 통해 제주공항에서 집단 학살돼 암매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4·3평화재단은 2006~2018년까지 12년간 진행된 유해 발굴 사업으로 제주국제공항(388구), 화북 별도봉 진지동굴(11구) 등 5곳에서 모두 405구의 유골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신원이 밝혀진 4·3희생자 유해는 ▲1949년 군사재판 사형수 74명 ▲서귀포 3면(서귀·중문·남원면) 예비검속 희생자 27명 ▲모슬포 예비검속 7명 ▲9연대 군인 2명 ▲민간인 23명 등 모두 133명(3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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