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정월 멩질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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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한 노인이 그리운 추억을 소환한다.

아이고 나이 혼살 먹젱해도 원 무사 영 복잡혼디사, 멩질이엔 혼거 읏어시민 좋겨!’ 하면서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멩질이 돌아온다고 신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요즘 아이들은 세뱃돈 얻어낼 궁리를 하며 가슴이 부풀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새옷 입어보고 곤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데, 크게 기대를 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곤밥!

고운밥의 준말이다. 곤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란 제삿날, 잔칫날 . 뭐니 뭐니 해도 멩질날이 아니었던가.

그랬었다.

이웃집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울담 너머로 넘겨준 차롱엔 밥이랑 나물, 돼지고기 적갈 몇 점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 밥상에 올리면 몇 술 드시는 체하다가 아까 무신거 입다시려나난 벨로 생각이 읒저하시면서 어린 것들에게 물려주신다. 재빨리 눈치 챈 어머니는 아이 밥사발에 몇 숟갈씩 나눠 주셨을 때 그 맛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사락사락한

산디쌀 밥(밭벼).

정월 멩질날!

먼저 작은 아버지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기대했던 곤밥과 갖은 음식이 그야말로 차례로 기다리고 있다. 그 때 한 어른이 조그만이 먹었당 큰 아버지 집에 강 잔뜩 먹으라는 한마디를 던진다. 그래도 귀에 넣지 않고 먹기에 바쁘다. 샛아버지 집을 거쳐 큰아버지 집에 왔을 때는 포식해서 더 들어갈 곳이 없는 것 같지만, 차려놓은 음식을 들여다보며 입맛 다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욕심을 버릴 수 없어, 적꼬치에서 빼어놓은 고기에 손이 갈적엔 ~ 그만 먹어라. 배 터지켜. 지금꼬지 경 먹어뒹 또 먹젱 호혐시냐고 말리는 큰 누가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멩질이 코앞이다. 신축(辛丑)년 소띠의 해, 정월 축일에는 소의 날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만큼은 소를 쉬게 하고, 요물도 삶아주고 살찌우기 위해 달걀에 참기름을 풀어놓아 보약으로 먹이기도 했다. 농사철 민초의 하루는 동창이 밝자마자 소에 쟁기를 메워 밭을 가는 일로 시작된다.

차례상에 올려진 곤밥은 그냥 올라온 것이 아니다. 차례를 마련하는데 일등공신 은 바로 농우(農牛).

동창이 밝자마자, 쟁기를 메워 이랴!” 소리에 앞으로 가고, “워워소리에 멈췄던 소가 밭을 가는 길이다. 그 길의 소는 사람과 가장 소중하고 친숙한 파트너였다. 우직스러우면서도 성실하고, 온순하며 끈질기다. 그러기에 소는 평생 일만해왔습니다. 소야 ! 고맙다.

지금은 옛말하고 살고 있지만, 그 모진 세월에 혹독한 눈물과 억척같이 고생한 거친 숨소리가 들여오는 것 같다.

신축(辛丑)년 새해! 거친 붓칠로 힘찬 기운, 역동적인 자세를 나타고 있다. 이중섭 화가의 대표작 흰 소처럼,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힘찬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음메의 울림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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