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나지막이 부르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는다. 내일을 걱정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오늘 가진 것을 나누며 행복을 느끼는 삶을 잠시 꿈꿔본다.

가사처럼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 고백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것이 행복이라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나는 “저요”하고 손을 들 자신이 없다.

문득 그리고 또다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꺼내 읽는다. 10대에는 그저 읽었고, 20대에 다시 읽으며 책임에 대해 고민을 하였던 얇은 단편이다. 그리고 마흔을 바라보던 시절, 고난 속에 있던 나를 위로해준 책이다.

러시아가 배경인 이 책의 주인공 시몬은 아내와 모직 코트 한 벌로 겨울을 나야 하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다. 모아둔 돈과 빌려준 돈을 합하여 올해는 꼭 양털 외투를 준비하리라고 나섰지만, 돈을 못 받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벌거벗은 젊은이에게 그 모직 코트를 벗어준다.

겉옷이 없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던 아내는 양털코트는커녕 남편과 자신이 번갈아 입는 코트를 입힌 낯선 이를 데리고 와 내일 먹으려 아껴놓은 빵을 달라는 남편이 밉기만 하다. 하지만 측은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이고 잠자리를 내어준다. 그날 밤, 부부는 어려운 이를 도왔다는 것에 스스로 행복해하며 잠자리에 든다.

톨스토이는 이 글 끝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으며, 사람은 미래를 알 능력이 없기에 자신을 돌보고 미래를 계획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업무상 만난 이의 확진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대로 회사와 집을 떠나 자가격리에 들어가야만 했다. 혼자 머무는 시간은 우울하였고, 갑작스러운 복통은 극한의 두려움으로 변질하기까지 했다. 그저 진통제 몇 알이면 되는 가벼운 질병임을 짐작하면서도 외출이 어렵기에 이틀을 꼬박 통증과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의 코로나 검사와 다시는 자가격리 기간에 규칙을 어긴 이를 함부로 욕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행복은 분명하고도 충분하였다. 그새 너저분해진 집이지만 나의 침실에서 자는 잠은 부족함이 없었고, 오래된 벗 같던 남편도 사랑스러워졌고, 지겹던 집안일도 신이 났다. 그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였다.

지면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감사를 전한다. 안부 전화를 걸어주고 수다를 떨어주던 이들에게 감사를, 문밖에 먹거리를 걸어놓고 주차장에서 소리치며 손 흔들어 준 이들에게 무한의 사랑을 드린다.

주인공 시몬이 낯선 이를 데려온 밤, 아내는 “우리는 이렇게 남을 도우려 하는데 왜 남들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걸까요?”라 한다. 내가 그랬다. 바쁘다고 안부 전화조차 인색하게 사는 삶을 성실함이라 여겼는데, 시간을 내어 위로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제는 내가 사랑을 할 때인가 보다, 사랑을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