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기억과 진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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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찾아본 영화였다. ‘폴 그린 그래스’ 감독의「뉴스 오브 더 월드」.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즈음을 배경으로 황량한 서부 텍사스를 가로지르는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다. 전쟁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상실감에 사로잡힌 두 인물의 서사에는 잔혹한 기억의 고통을 어찌해야 하며, 혼란한 시기 참된 언론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아낸다.

‘제프리’ 대령은 남북전쟁 중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전쟁 전 인쇄업을 하며 신문을 제작했던 그는 전쟁이 끝났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뉴스 읽어주는 남자’로 황야를 떠돈다.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으로 아내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잊기 위해 방황한다. 그러다 열 살 소녀 ‘조해나’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이 인디언 가족을 잃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은 독일 출신인 부모가 인디언들에게 죽임을 당해 버려졌던 그녀를 인디언 ‘카이오와’ 부족이 거두어 기른 것이었다. 두 인물에게 ‘기억’은 가슴을 도려내는 끔찍한 일들이다.

‘제프리’는 “정착민들은 땅을 차지하려 인디언을 죽이고, 인디언들은 땅을 되찾으려 그들을 죽였다.”라고 한다. 미연방 정부는 영토 확장과 서부개척을 위해 인디언들을 학살했는데, 3000만 명이던 인디언들이 보호구역에 150만 명만이 살아남았다 한다. 소녀는 그런 학살의 현장에서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던 것이다.

기억을 잊으려 안간힘을 쓰는 ‘제프리’는 소녀에게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잊어야 해”라고 한다. 그러자 소녀는 단호하게 말한다. “앞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억해야 해”라고. 참혹한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전진이란 없다. 과거에 대한 기억 투쟁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편 영화는 참된 언론의 문제도 다룬다. 황량한 텍사스를 떠돌며 밤이면 사람들을 모아놓고 10센트씩 받고 신문을 읽어주는 주인공은 우리의 ‘설낭(說囊)’과 같다. 신문도 제대로 볼 수 없을뿐더러 문맹률이 높던 시절이었으니 사방을 떠돌며 정보를 수집하고 그 소식을 동떨어진 마을에다 전해주는 일은 정말 중요했을 터. 하지만 그 뉴스가 탐탁지 않은 존재도 있다는 게 문제다.

가죽을 얻으려 버펄로를 대량으로 살상하는 마을을 두 인물이 찾아들었을 때, 그곳을 지배하던 인물은 가짜 뉴스를 읽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거부한다. 주민들에게 선택권을 주자며 다른 지역의 탄광촌 사건을 말한다. 그러면서 “이 불행한 영혼들이나 노동자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호화로운 집에나 앉아 노동자들이 만들어준 돈을 세고 있는 광산 소유주”라며 비판한다. 그곳 지배자는 그에게 총을 겨누며 “우리가 아랫것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넌 몰라. 멕시코인, 흑인, 인디언들 그들에게 조금만 틈을 주면, 모두들 네가 오줌 누는 동안에 네 목을 따려 들 거야”라고 한다. 진실을 유폐시키지 않으면 대중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온갖 뉴스가 꽉 들어찬 지금도 권력과 자본은 교묘히 진실을 왜곡한다.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알랭드 보통, 『뉴스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아픈 기억을 많이 가진 우리네 역사, 가짜 뉴스가 차고 넘쳐 진실을 모르게 만드는 언론의 현실 앞에서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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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인 2021-02-22 19:19:4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도 봐야겠고요.
두루 재능많으신 오대혁시인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