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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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애월문학회장

서류에 서명을 해도 되는데 꼭 도장을 찍어야 한단다. 인주가 보이지 않아 집안 곳곳에 있을만한 곳을 한참 찾다가 인주를 사기로 하고 문방구점에 들어갔다. 한번 쓰고 나면 거의 쓸 일이 없는 것이기에 큰 것도 필요 없고 둥그런 작은 인주 한 개를 들고 계산대에 들어섰다.

종업원이 하는 말 “500원 되시겠습니다”한다. 엥 이게 무슨 말인지 순간 당황했다. 그 종업원은 내게 친절하게 대한다고 존댓말을 했을 터이지만, 내가 듣기엔 금액(돈)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뭐라고 한마디 할까하다가 입 밖에 나오는 걸 겨우 참고 나온 적이 있었다. 이처럼 금액을 말하는 것에 존대의 ‘-시-’를 사용하고 있어 문제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홈쇼핑 방송에서도 예외 없이 사물 주체에 ‘-시-’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 그 예를 보면 “이 신발은 볼이 넓으셔서 발이 편하세요”, “모든 상품이 품절이세요”, “색깔이 예쁘십니다” 또 “이 제품이 이벤트 기간이기 때문에 훨씬 저렴하세요”와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을 높여야 하는 말에 물건을 높이다니 어처구니없다. 제품(물건)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말씨는 문법에 어긋나는 지나친 존대 표현이다.

어느 날 모 은행에 들렸다. 옆 창구에서 은행원이 “오늘이 납부 마감일이세요”하는 말이 들린다. 이 말은 “오늘이 납부 마감일입니다”로 해야 맞는 말이다. 주체 높임법에 사용하는 ‘-시-’를 마감일이란 날짜에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상대와 관련된 사물이 주어가 된 경우에는 일부 사물에도 주체 높임법을 사용해서 높일 수 있다. 가령, “얼굴이 참 고우십니다”라든가, “마음이 무척 넓으시군요”라는 말은 높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각각 ‘얼굴과 ‘마음’을 높이고 있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위 예에서 보듯 일상생활에서 물건을 높이다보니 이상한 말이 맞는 말인 양 사용하고 있어 문제다. 이러한 예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언어인식 개선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다.

결론적으로 ‘사물(물건), 공간’에는 높임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말은 그 사람의 품위와 인격을 나타낸다. ‘말이야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지. 뭐 아무렇게나 쓰면 어때?’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수화 등 뜻이 필요로 했을 때의 경우고,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어법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우스운 말이 돼버리고 만다.

잘못 쓰는 말을 잘못 쓴다고 누구 한 명 얘기를 안 한다는 것과 잘못 쓰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이란의 시성(詩聖) 사아디 고레스탄은 “말이 있기에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당신보다 나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겨 바른 언어 사용이야말로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임을 강조했다.

말은 곧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인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정보·문화시대에 신문, 방송, 인터넷 등에서 우리말과 글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올바른 언어생활로 언어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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