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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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거실 TV는 혼자 떠들고 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습관처럼 켜 놓는다. 적적한 공간에 그나마 생기를 불어넣는 우리 집의 필요한 소음이다.

남편은 새벽에 신문을 읽으며 중요기사에 붉은 밑줄까지 그어 놓고 내게 건넨다. 운동 삼아 한 시간가량 함께 공원을 걷는 게 중요 일과다. 가물가물 도망가는 기억력을 잡기 위해 책을 읽다 메모하고, 짬짬이 베란다 화분에 정을 쏟는다. 정성이 지나쳐 가끔 명줄을 놓는 화초도 생긴다. 그대로 두어도 될 것을 사랑이 극진해 손을 탄 화초는 시름시름 앓다 더러 죽기도 한다. 꽃을 가꾸고 돌보는 건 전적으로 내 몫이었지만 거리를 두었다. 처음엔 못마땅했으나 이제는 모르는 척 눈 감아 버린다. 싫은 소리에 감정만 상할 뿐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견하고 끼어들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하는.

노트북을 마주하면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개의치 않고 글을 쓴다.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작업이긴 하지만, 무엇도 들일 수 없는 몰입의 영역이다. 한 자락 진솔한 언어가 누군가의 가슴을 적시며 공감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도 크다. 마지막 단락에 마침표를 찍고 쾌재를 부를 때의 성취감은 무엇에 비할 게 아니다.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고 화분을 가꾸는 일, 나 혼자의 세계로 침몰해 글을 쓰는 것, 일종의 놀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하는 놀이를 찾기 쉬운 것 같아도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각자 살아가는 잣대는 틀리지만, 최근 나이 들면 좋아하는 일 한가지쯤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다. 일상에 감초 노릇할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덧 우리는 노부부로 불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에 소스라친다. 종일 별 오가는 말이 없어도 눈짓이나 표정으로 서로 의사를 읽는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촉수로만 감지할 수 있는 느낌이다. 감출 것도 드러내 보일 것도 없는 담담한 일상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으로도 무언의 대화다.

밖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런 것들이, 혼자 남게 될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홀로 사는 삶이 얼마나 막막한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같이 했던 일을 어느 날 뚝 끊긴 단절감은, 고스란히 남은 자의 몫이다. 그러다 보면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사회생활도 원만하지 못하다. 혼자 고립될 수밖에 없는 혹독한 외로움과의 싸움은, 삶을 피폐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능숙하게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거나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일에도 순서와 지혜가 있다. 수건을 네 귀를 반듯하게 맞춰 돌돌 말아 정리함에 넣고, 자기 속옷만 걷어 대충 서랍에 넣다 눈치가 보였던지 이젠 내 것도 챙긴다. 처음에는 흡족하지 않았지만, 숙달되니 나보다 더 야무지다. ‘이만하면 되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야 즐겁다. 힘들었던 거리 두기 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은, 앞으로 노년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남은 삶의 질이 달린 일이다. 병을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강도 철저한 자기관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소일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즐기며 사는 삶, 노년의 슬기로운 준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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