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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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계절이 딛고 선 너 댓 평 남짓 1층 베란다 앞, 그곳으로도 봄기운은 벅차다. 어느 해던가. 동백나무 몇 그루에 벌레가 잔뜩 들러붙어 이미 잎사귀를 다 갉아놨고 나무들은 해를 못 넘길 듯 수척했었다. 그런 와중에도 힘겨움을 딛고 계절의 정직한 순환을 마주한 덕일까. 매서운 눈발 속에서 꼿꼿이 추위를 초록으로 받아내더니 동백 서너 그루에 선명하게 붉은 꽃들을 피워냈다.

힘겹게 명줄을 지켜낸 나무에 붉게 매단 꽃이 유난히도 곱더니 뚝뚝 떨어져 꽃 진 자리마저 곱다. 이젠 계절에 순응하며 제 몫, 제 할 일로 자연의 순환을 온전히 마련 중이다.

얼마 전, 이 화사한 봄기운 안에서 기사 하나가 낯 뜨겁게 했다. 어느 한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부 받은 물품 중 절반 이상이 망가져 쓸 수 없거나, 사용기한을 넘긴 물건이라는 것이다. 의류품들도 늘어지거나 보풀이 너무 심해 재순환하기가 어려웠단다. 그날 하루 2.5톤을 내다 버렸다는 내용과 함께 분류작업 하느라 인력과 시간, 폐기비용까지 부담하게 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재순환 못할 물건을 기부라는 이름으로 받아서 독박 쓴 셈이다.

그 기사를 접하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앞장선다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아름답지 못한 일들도 생겨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곳은 자원의 재순환을 통해 세상의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활동 목적 중 하나라 들었다. 물품을 기부 받고 나눔을 실천하는 곳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뉴스에 듣는 내내 민망했다.

뭔가 함께하려는 마음도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잘 안 쓰는 물건을 요긴한 곳에 나누자는 것인데 아무렴 알고서야 그랬을까. 하지만 나누고자 하는 물건을 내가 받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누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더불어 기쁘고 보람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기부의 의미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학교나 사회 각 분야에서 기부며 자원봉사로 나눔이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노인이나 장애인 혹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요처를 찾아 다양한 방법으로 각계각층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미담도 접한다. 내 능력의 범위에서 돈이나 물품을 필요한 곳에 나누는 것도, 내가 가진 지식이나 재능을 함께하는 것도 기부다.

기부나 봉사 등을 통하여 아름다운 일들을 실천함으로써 다른 이에게 동참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계기도 되고, 선행에 따른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순수로 시작된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을 수 있다.

더러 기부는 넉넉해야 하는 것이고, 봉사는 시간이 남아야 하는 일로 아는 경우가 있다. 나눔은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자람 속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봉사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어 함께 할 때,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쁘고 보람된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시작된 나눔, 따뜻하게 시작한 일은 결과도 따뜻함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봄볕이 음지로 바쁘게 들어오고 길 건너 흐드러지게 핀 봄꽃에 동네가 다 환하다. 온정을 펼치는 모든 이의 마음에도 이 봄의 기운처럼 정직한 순환을 통하여 따뜻함이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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