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어도 좋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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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세상 삭막하다, 일상이 고단하고 산다는 게 속절없다, 인생이 참 외롭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방황의 끝이 안 보인다….

삶을 부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체성의 동요, 자신감의 결여에 연유할 것이다. 삶을 부정함은 결국 인생이 흔들릴 전조(前兆)이므로 간과해선 안된다. 철학에 호소해 정신의 허한 구석을 채워놔야 한다. 인생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와 심층적 성찰이 필요하다.

한 그루 나무가 악천후를 견뎌 거목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대지가 불타는 가뭄에 타들어 가면 나무는 그냥 있지 않고,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다.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관정(管井)으로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벌겋게 타던 벼에 파릇파릇 생기가 감돈다. 시들어 가던 생명이 기사회생하는 것이다. 한마디 말 못하는 나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싹에 한줄기 물이 생명을 부활케 하는 것은 경외할 만큼 숭고하다.

절망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엔가 이런 사랑의 마음, 선연(善緣)이 있을 것이란 믿음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한 그루 나무, 갓 모내기한 어린 벼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겻은 많은 양의 물이 아니다. 시골 텃밭, 초가 처마 아래 부추가 무성한 것은 자연이면서 필연이다. 누가 물을 주지 않는 데도 잘 자란다. 강인한 생명력에다 방울방울 지는 빗물의 합작이다. 한 생명 위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의 은혜로움.

인생을 풍요롭게 많은 혜택을 원하는 것은 섭리가 아니다. 한시도 정체해 있지 않은 일개미에게서 그것을 일깨운다. 삶을 부정하면 그 너머에 깊은 절망의 늪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시난고난 중, 친구 L로부터 여러 번 연락이 왔다. 문자로 전화로, 기록으로 확인된다. 나는 그에게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답하지 않다 한번은 수화기를 들었다. “자네가 어떤 상태인지 마음 졸여 연락이 힘들었네.” 여러 번 나를 찾았으면서…. 동창생이면서 글을 같이 쓰는 친구의 목소리에서 날로 늙어 가는 우리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너 없으면 어떻게 하냐?” 지금도 나는 그 말의 긴 여운 속에 있다. 나는 즉답하지 않았지만 가슴에 품고 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리라. 내게서 짙게 드리웠던 어두운 그늘 하나가 틈을 제쳐 시나브로 걷혀 가고 있다.

또 하나.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더니 나이를 잊은 목소리. 옛집에 그냥 살고 있고 전화번호도 시대의 물결에 조금 밀렸을 뿐이다. 011이 010으로, 다음은 앞에 2만 덧붙었고 그대로다. ‘아, 시종여일 그는 변함이 없구나.’ 와락 묵은 정이 되살아났다. 그의 집 옆에는 붐을 타고 아파트 아니면 빌라 몇 채가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가 하자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함께하거나 또 해줄 만큼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변함없음’은 마음을 사로잡는 야릇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편협한 것인진 몰라도 나는 난을 가꾸는 사람을 무조건 신뢰한다. 꽃을 보려는 것이겠지만, 물주기를 잘해야 하는 게 난 기르는 기본이다. 숙취에도 깨어나야 한다. 반려식물을 사랑하는 이는 인생을 성실히 사는 사람이다. 마음을 열어도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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