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의 비밀 병기, ‘평생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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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논설위원

지난 3월은 아산 정주영 회장이 별세한 지 20주기였다. 아산은 정회장의 고향 마을이다.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을까?

‘청년 정주영, 시대를 通하다’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비롯한 추모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렸다. 그중에서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 대한 독후감 대회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실은 탐라대학교 시절,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경영 사례로 다룬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자서전 속 한 마디, ‘이봐, 해봤어?’에 가슴이 뜨거워진 학생들이 ‘그래, 해보자!’며 응수하고 나섰다. ‘은행에서 남의 돈을 헤아리느니, 식당을 차려서 내가 번 돈을 세어보겠다’며 식당 종업원을 선택한 순이, 공항에서 안전하게 보안요원으로 일하느니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가의 길을 가보겠다‘며 중국으로 떠난 준이 등. 지금은 웨딩컨벤션의 사장이 된 순이를 바라보며, 아직도 소식이 없는 준이를 생각한다. 괜히 ‘경영학도답게 모험을 선택하라’며 등을 떠민 건 아닌지.

이번 독후감 대회에서는 ‘지도자의 품격’을 쓴 고등학생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송전소학교 2등 졸업’이 정규학력의 전부인 정주영에게 품격이란 말은 낯설지 않은가? 하지만 막노동꾼 시절, 숙소의 하찮은 벌레에서까지 배울 점을 찾는 집념과 리더십에서 지도자다움을 발견했음에랴. 내용인 즉, 빈대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던 주인공이 고민 끝에 침상의 4 다리에 물을 가득 채운 대야를 받쳐두었다. 빈대가 침상에 오르려면 물을 건너야 하니, 불가능한 일이라 여긴 아이디어다. 그렇게 하룻밤을 잘 수 있었는데, 다음 날 다시 괴롭혀서 불을 켜보았다. 세상에!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몸을 날려 뛰어내리는 빈대들. ‘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마지막까지의 최선’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그의 일생을 줄곧 사즉생(死卽生)의 도전으로 이끌어 갔다.

이처럼 노동을 하면서도 남달리 창의적 발상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첫 직장은 쌀가게였다. 가게에는 6명의 배달꾼이 있었는데, 저녁에 문을 닫으면 모두들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쳤다. 다만 한 사람이 책을 읽었다. 가게 주인의 눈에 비친 정주영은 밤이 되면 항상 공부를 하는 단정한 청년이었다.

사실 그는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동몽선습·소학·대학·논어·맹자를 배우고, 무제시·연주시·당시 등도 맛보았다. 말하자면 서당에 다니면서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의 기초를 터득한 셈이다. 하기야 로버트 풀검의 저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읽으며,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공감하였던가.

‘이 땅에 태어나서’를 마치며, 그는 시련에 빠진 오늘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내가 물려줄 유산은 노동에 대한 내 생각이다. 일하는 것 자체가 그저 재밌어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오늘의 나이다. 행복에도 조건이 있다. 공부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나는 소학교 졸업밖에 못한 사람이지만 평생 좋은 책 찾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세까지 바깥세상과 거의 단절된 농촌에서 그래도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신문 덕택이었다. 세상 소식과 연재소설 ‘흙’을 읽으며 주인공 허숭 같은 삶을 꿈꿨다. 막노동을 하면서도 밤에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법제통신, 육법전서 등을 사서 공부도 해보았다. 비록 실패했으나 행복하였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이 봄 만큼은 청년 정주영이 소통하고 싶어 하는 뜻- 배움으로 행복한 삶을 꽃피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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