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고통과 우리의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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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고통 중에 가장 심한 고통은 사랑의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진실한 사랑은 진실한 만큼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나이 많은 세대가 정치적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있었다. 긍정 부정의 시각이 있긴 하겠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자녀의 미래를 염려하는 그들의 마음은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고통은 깊은 관계가 있었을 듯하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당하려 한다. 부모의 고통 없이는 자녀의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이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 것은 고통과 고뇌를 통해서이다. 위대한 사상은 큰 고통으로 깊이 경작된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큰 고난이 없다면 깊은 사상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다.

세계사에서 우뚝 일어선 나라들은 고난의 역사를 통하여 백성이 연단을 받고 성숙해진 나라들이다. 근래에 우리가 겪어온 이 시대의 고난에 대해서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서 세계의 미래에 대하여 논하는 자리에서 어느 학자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생명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그러고나서 그는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그리고나서 희망의 반대말이나, 사랑의 반대말 역시, 우리의 무관심이라고 외쳤다.

한국의 역사는 특히 현대사는, 온갖 트라우마가 수시로 분출되는 활화산과도 같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던 역사적 사건들이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해석을 내세우면서 당당한 목소리로 등장한다. “이제부터는 이 나라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함성과 함께 사회적인 광풍이 휘몰아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가 하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격렬한 여론 조성에 동원되거나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금기시되어가는 편이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역사는 무관심의 창고 비슷한 위치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인다.

근래에 와서 코로나와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닥쳐온 듯하다. 큰 고통은 금새 지나가고 오래된 고통은 그렇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꽤 오래된 고통은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말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시대적인 고난에 무감각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오래된 고난에 지치고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모든 일에, 특히 정치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되어가는 마음들이 위험스러워 보인다. 코로나 상황이 오래 지속되고 언제면 끝날지 앞이 안보이는 상황에서 삶에 지치고 힘들어서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되어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관심이 우리의 소중한 현재와 미래를 희망없는 어두움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어두운 정치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무관심해져 버린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더 어둡게 될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우리는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날 길부터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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