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이래 제주의 심장 제주읍성 ‘성안’
탐라 이래 제주의 심장 제주읍성 ‘성안’
  • 제주일보
  • 승인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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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주원도심 트레일
적 칩입 막기 위해 쌓은 읍성
일제강점기 민족 얼 말살 위해
성곽 허물고 일반시설 들어서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배경
구한말 분위기 느낄 수 있어

제주시 구도심 지역은 원래는 견고한 성으로 둘러쳐져 있었기에 옛날엔 ‘성안’으로 불렸다. ‘성(城)의 안쪽’이란 뜻이다. 어느 역사에서든 중요 거점지역은 단단한 울타리를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다. 나라의 중심엔 종묘와 왕궁을 둘러싼 도성(都城)이 있었고, 관아(官衙)가 있는 지방의 읍치(邑治) 고을들은 읍성(邑城)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방 제주의 관아가 있었던 지금의 구도심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레 3㎞가 조금 넘는 제주읍성은 일제강점기 때 거의 허물어졌지만,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제주사람들은 제주시를 ‘성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제주에는 한라산 중턱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방사형으로 퍼지며 수십 개의 하천을 이루는데, 그 중 한라산 북쪽으로 내려가는 물줄기 중에는 병문천과 산지천이 1㎞ 간격을 두고 제주시 앞바다로 흘러든다. 세계 어느 역사에서나 성곽 주변엔 적의 침입을 어렵게 할 목적의 자연 또는 인공 해자(垓子)가 존재했다. 제주읍성은 병문천과 산지천 사이에 둥그런 타원 형태로 쌓은 성곽이다. 두 하천을 자연 해자로 활용한 것이다.

역사학자 홍기표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기록상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제주성은 조선 태종 8년인 1408년입니다. 당시 홍수가 나서 제주성이 범람하여 관아와 민가가 물에 잠겼다는 사실이 전해지죠. 따라서 조선 건국 이전부터 제주성이 축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고,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탐라 고성(古城)이 축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후 조선시대로 들어와 명종 20년인 1565년에는 산지천까지 성 안에 들어오도록 동쪽으로 300m 가량을 더 넓혀 증축했다. 빈번해지는 왜구들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성 안에 우물 등 급수원이 모자랐던 애로점을 해소하는 일거양득의 목적에서였다. 

이후, 성곽이나 성문 위에 공신정, 제이각, 북수각 등 정자나 누각들을 추가하면서 견고한 성곽을 유지해왔으나 구한말로 접어들면서 읍성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다. 한일합방 직전인 1907년, 일제가 이완용을 허수아비로 내세운 내각령 1호로 성벽처리위원회를 구성하면서 한양 도성 등 조선의 모든 성곽들을 헐어 없애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도성이나 읍성들은 조선 역사의 얼과 문화를 담고 있었기에 이들을 말살해버리기 위함이었고, 또한 의병 활동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읍성을 없앤 자리에는 ‘신작로’와 공공건물과 일반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제주읍성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1913년부터 시작해 성문과 성벽과 정자와 누각들이 매년 단계적으로 차례차례 헐려나갔다. 1926년부터는 산지항 방파제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엄청난 량의 암석들이 필요해졌다. 읍성을 헐어낸 돌들은 모조리 여기로 운반되어 바다 매립과 축항 공사에 쓰이게 된다. 제주읍성의 성벽을 구성했던 그 많은 돌들은 거의 대부분 지금의 제주항 주변 바닷속이나 방파제 그리고 항만 건물 등에 묻혀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구제주 시가지에서 읍성의 흔적을 찾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책상머리에 앉아 지도상으로 성곽 루트를 그려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제주읍성에는 해안인 북쪽을 제외한 동, 서, 남 방향으로 세 개의 성문이 있었고, 읍성을 관통하는 산지천 남쪽과 북쪽으로 두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들 5개 거점을 남문-서문-북수구-동문-남수구-남문 순으로 이으면 지도상에 성곽 한 바퀴가 그려지는 것이다. 

‘이재수의 난’을 다루는 현기영 작가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도 그 후반부 배경은 제주읍성이다. 소설 초반에 한양에서 온 유배객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묘사하는 글귀에서 1901년 구한말 당시의 제주읍성 분위기를 살짝 엿볼 수가 있다.

‘날 좋은 날이면 북성 위 공신정 정자에 올라 질펀한 제주 바다 바라보기를 했다. 낮 바다에는 떼를 지어 물질하는 잠녀들과 뗏목배들이 한가롭고, 해가 빠지는 저녁 바다는 온통 붉은 낙조에 물들어 간담 서늘한 장관을 이루곤 했다. 밤바다 또한 볼만했으니, 온 바다가 명경같이 밝아지는 달밤은 물론이려니와, 어두운 밤에도 멀리 갈치밭에 수십척 떠 있는 주낙배의 어화 불빛이 아물아물 고왔다. 서문 밖 경치 좋은 용연에서 배 띄워 놀기도 하고, 남문 밖 삼성혈 노송 숲에서 좁쌀로 빚은 토주를 마시기도 했다.’ 

‘원도심’ 여행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가는 추세다. 제주뿐만이 아니다. 밝고 화려한 도시나 아름답고 멋진 자연 풍경을 찾아가는 여행에 질려가는 이들이, 퇴락해가는 도시를 찾아 그 속에서 풍기는 은은한 옛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제주원도심 트레일 6.5㎞

제주원도심 지역은 이런 추세에 부응할 만한 여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아직까진 외지인 여행자들을 견인할 만한 체계적인 루트 개발은 돼 있지 못하다. 올레길이 관통하긴 하지만 칠성통이나 탑동 등 주요 지역은 거치지 않는다. ‘무근성 방삿길’이나 ‘제주목 탐방길’ 등도 소개는 되었지만 원도심 전체를 아우르는 힘은 약하다.

역사 문화 등 옛 정취는 물론 지역 상권의 고유 분위기까지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동선이라야만 외지인 여행자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필자가 구상해왔던 ‘제주원도심 트레일’을 소개한다. 관덕정에서 출발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남문사거리-남수각-동문시장-산지천-칠성통-서부두를 거쳐 관덕정으로 돌아오는 6.5㎞ 순환 코스이다. 올레길-제주읍성-주요 상권 세 요소를 적절히 조합했다. 원도심 여행자들에게 볼거리·먹거리·느낄 거리 삼박자를 골고루 제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동선이라고 생각한다. <끝>

※‘걸어서 세계여행’은 이번 58회로 끝을 맺습니다. 15개월 동안 여행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는 ‘영화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란 제목으로 연재됩니다. 변함없는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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