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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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주인 없는 빈집에도 봄은 오고 진달래가 먼저 핍니다. 자연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문인들은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네요.

타이태닉호의 참사는 과학기술에 의한 문명의 진보를 확신하던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이었지요. 지금도 부실한 현대 문명의 상징으로 인용되곤 합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대참사 속에서도 많은 승객을 구출한 100년 전, 1912년 4월 14일의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입니다. 최대 규모로 건조된 타이태닉호는 220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으로 출항합니다. 영국 사우샘프턴항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배였지요. 당시 일등실 요금은 현재 가치로 5만 달러가 넘었답니다. 부자들이 주로 탑승 했으며, 이민자들이 요금이 싼 하층 객실에 머물렀고 사망자들 대부분 그들입니다. 1등실 탑승자 중 여성은 97%, 어린이는 52%가 살아났고, 3등실은 55% 구조돼, 전체 남자는 70%가 사망했답니다. 타이태닉호는 2200여 명 승객 중 1513명이 사망한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입니다. 생존자는 겨우 711명,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인명 피해입니다. 많은 승객을 죽음에서 구해낸 선장과 선원들, 지금까지도 침몰 여객선 참사보다는 아름다운 인간애를 발휘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타이태닉호 해난 사고가 10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날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에서 제주로 향하던 배가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지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거라.’고 방송한 선장은 승객을 내팽개치고 선원들과 몰래 비밀통로로 탈출했습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는 선원들은 이미 빠져나갔습니다. 침몰 이후 구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망과 행방 불명자는 303명에 이릅니다. 그 후 검찰이 수사를 통해 참사 발생 원인과 사고 수습과정을 발표했으나 유가족들의 울분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세계 최빈국의 상황에서도 매년 정부 예산의 10%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습니다. 학자들의 논리를 보면 4·19의 주역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역이 될 만큼 숫자가 늘어났음은 대통령의 교육열에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대통령 부정선거에 항의해 학생과 시민들이 규탄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해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돼 일으킨 반독재 운동이 4·19의거입니다. 1973년 3월 ‘4·19의거 기념일’이 제정되었고, 그 후 1994년 12월 ‘4·19혁명 기념일’로 바뀌었습니다. 4·19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이승만의 성공과 실패가 함께 공존한 결과라고 학자는 말합니다. 그의 치적과 실정이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지요. 분명한 업적은 주권자가 국민임을 확고히 했다는 사실입니다. 4·19혁명의 진정한 교훈은 어제의 경험이 오늘과 미래를 연결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 세계 최하의 출산율, OECD 국가 중 청년실업률 1위, 매우 심각한 노인 빈곤 현실, 주권재민의 문제 못지않은 과제들입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들이 정치의 중심과제가 돼야 합니다. 또한 병리의 치유를 위해서 경제민주화 논의를 한층 성숙시키고 일시적인 세금복지가 아닌, 복지의 보편화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봅니다. 해마다 4월이면 떠오르는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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