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흉년 때 치러진 시험…당면 문제 책략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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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794년 제주시재
수많은 기아자 발생하자 위로하고자 시행돼…총 17명 합격
국가 미래 논하는 책문에 가장 적은 수 응시…차석에 김명헌
탐라순력도 승보시사. 1702년(숙종 28) 윤6월 17일 관덕정에서 시행된 승보시 모습을 시험관이었던 이형상 목사가 그린 것으로 당시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승보시는 본래 성균관 유생들이 치르는 소과(小科)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인데 지방에서는 개성, 제주, 수원에서 시행됐다.
탐라순력도 승보시사. 1702년(숙종 28) 윤6월 17일 관덕정에서 시행된 승보시 모습을 시험관이었던 이형상 목사가 그린 것으로 당시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승보시는 본래 성균관 유생들이 치르는 소과(小科)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인데 지방에서는 개성, 제주, 수원에서 시행됐다.

▲갑인년 대흉년 제주시재

1794년은 제주에서 수많은 기아자가 발생한 해이다. 정조임금은 이러한 상황을 위무하고자 심낙수(이후 제주목사로 재직함)를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로 제주에 파견해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문과에 7명, 무과에 10명을 뽑았다. 합격자는 1795년 전시에 나아가 벼슬에 오르기도 했다. 

1794년 심낙수 어사가 내도해 실시한 제주시재에서는 문·무과가 3일간 치러졌다. 1일에는 195명 중 시와 부의 답안지 54장을, 2일에는 97명 중 명과 송의 답안지 59장을, 3일에는 65명 중 논의 답안지 36장과 책의 답안지 3장을 회수했다. 또 무사시재(武士試才)에서는 1558명 중 48명이 입격했다. 

정조임금이 내린 과거시험 문제인 어제책문(御製策問)은 다음과 같다. 

‘왕은 말하노라. 제주의 자제생(子諸生)들아, 너희들이 낳고 자란 곳은 옛날 구한(九韓)의 하나이다. 동영주가 바로 이곳이다. … 이 고을에서 낳고 자랐으니,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스스로 견문을 넓혀 식견이 명석한 자가 있을 것이다.… 내가 자제생들에게 다음을 묻고자 하는 바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①고을 이름인 탐라는 탐진에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나, 탁라 혹은 탐모라는 어떻게 하여 그 뜻을 취한 것인가 … ⑥성주와 왕자의 관계… ⑦한라산에 내려온 신인 … ⑩높은 봉우리 정상에는 이따금 물을 모으는 못이 있으니, 조물주가 어떻게 마음을 쓴 것인가. 자제생들은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는 나의 뜻에 부응하라. 내가 앞으로 친히 보려 한다.’

김명헌이 2등을 한 책문(策文)은 당면한 여러 문제를 선비들에게 제시해 그 책략을 구하는 시험이다. 과거 6분야 중 책 분야에 가장 적은 수가 응시하고 결국 과거 답안지인 대책(對策)은 3장에 불과했다. 책문은 단순히 입신양명을 위한 통과의례를 떠나 당시의 절박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국가 비전에 대해 왕과 인재들이 나눈 열정적인 대화였다고 할 것이다. 다음은 김명헌의 대책, 즉 답안지인 시권의 일부 내용이다. 

‘위대하도다, 우리 주상전하의 물음이여. 주상께서 신에게 대답해 보라 하시니…미신(微臣)은 옛날 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저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을 삼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계사년(1713년) 가을 농사가 큰 흉년이 들어 제주 백성들이 죽어가니, 숙종대왕께서 크게 걱정하시어 곡식을 옮기며 (제주민을) 살리려 하였는데, 혹시 배가 난파될까봐 자나 깨나 하늘에 비셨습니다. 선박이 탈 없이 도착했다는 공인(貢人)의 말을 전해 듣고서야 걱정을 푸시고 즉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千里南冥利涉難(천리남명리섭난): 천 리 남쪽 바다 편히 건너기 어려워 /風高移栗亦間關(풍고이율역간관): 바람 세어 곡식 옮기기 또한 힘드네 /報來船泊皆無恙(보래선박개무양): 모든 배가 탈 없이 돌아왔다 알리니 /天意分明濟寡鰥(천의분명제과환): 과부와 홀아비를 분명 구제함이 하늘의 뜻일세. …’ 1732년과 1733년 연이어 제주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접한 영조대왕께서 어사를 보내시고 곡식을 옮겨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백성들에게 이르기를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백성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를 바라고 있노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도다.’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토산물에는 조개진주, 귤유자, 명마 등 여럿 있습니다. 신등(臣等)이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광주리를 채우지 못할까, 궁궐 마굿간에 공납을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몇해 이래 흉년이 연이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 (제주에) 현량한 사람을 골라 파견해주시면 피폐한 백성은 뛰며 춤출 것인 즉 큰 가뭄과 장마에 말랐던 싹이 불끈 솟을 것이 분명합니다. … 땅의 성질은 떠서 씨앗을 번번이 마르게 하는데 새로 개간한 밭는 그만도 못하여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 오직 바라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인륜을 바르고 풍속을 바르고 명분을 바르고 오륜 중에 어긴 경우는 팔형(八刑)으로 바로 잡으셔야 할 뿐입니다. 신이 삼가 대답하나이다.’

▲정조임금의 유시(諭示)

정조임금이 위의 시권들을 열람하고 책에서 삼하(三下)를 한 유학 김명헌을 전시에 직부하라고 했다. 또한, 김명헌의 나이가 81세이므로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리도록 했다. 가선대부는 종2품의 품계로, 나이가 많은 선비에게 수직(壽職)으로 주는 제도였다. 수직은 해마다 정월에 80세가 넘은 관리에게 은전으로 주던 벼슬이다. 또한, 정조임금은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을 내려줬다. 탐라빈흥록은 규장각에서 1794년 편찬한 서책으로 제주도에서 시행한 문무 양과의 급제 명단과 시권의 과문(科文) 등이 실려 있다. 

정조임금께서 이르길, ‘제주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여 뽑고 과거시험의 순위를 정하여 급제한 사람과 똑같은 자격을 주라. 금년은 특히 중앙과 지방에 나이가 70세가 넘은 사람에게 품계를 올리도록 하여 조야에 널리 알려 축하할 때이다. 논, 책, 시, 부, 명, 송의 각 시제를 어사를 통해 내려보낸 것은 많이 뽑는다는 뜻이다. … 책에서 차석을 한 대정 유학 김명헌은 앞서 별견어사가 시험을 보여서 뽑을 때 나이가 70세에 가까워서 격외로 시상을 하였다. 금년에 또 81세로 응시하였는데 … 특별한 예로 과거에 급제한 이와 같은 자격을 주고, 경사를 함께 축하하고 똑같은 대우를 하라. …’ 

김명헌이 81세 고령인 점을 감안한 제주목사 심낙수의 장계로, 유생 김명헌을 급제자 명단 끝에 넣고 어사화와 홍패를 내려보내 제주 객사 뜰에서 사은 숙배하도록 했다. 전시 전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김명헌 공에 대해 조정에서는 법전에 의거해 종2품인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삼는다는 벼슬과 품계를 추증(追贈)했다.(앞선 86회에 실린 교지 참조)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김명헌 추모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김명헌 추모비.

▲김명헌의 만사

본관이 광산인 김명헌 공은 족보 을유보(乙酉譜)를 처음으로 편찬해 가계의 체통을 세웠을 정도로 문장이 훌륭해 영곡 고득종 이래 제주 제일의 문장가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김명헌이 지은 변승부 좌수에 대한 만사(輓詞: 죽음을 애도하는 시)이다.

※김명헌의 시=산과 바다 정기 받아 태어나신 어르신이여 /풍진 세상 바로 인도할 선비들의 윗어르신이여 /근원이 바른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아 /보배로움을 감추고 덕 있는 이웃들과 벗하더니 /움집에 살면서도 즐거움을 찾아 몸은 살쪄 / 궁에 처하여도 마음만은 즐거움 누렸는데 /어찌하여 선생은 혼탁함을 싫어하여 /하루아침에 병도 없이 홀연히 떠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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