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밑바닥에서 떠난 여정…과거 상처에서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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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일드
불행했던 유년 보낸 셰릴
버팀목이던 엄마의 죽음
난잡한 생활 도피처 삼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책자 본 후 엄마 떠올려
새 인생 위한 여행 떠나
불행했던 과거를 잊기 위해 난잡한 생활을 이어가던 셰릴은 어느 날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안내 책자를 보게 된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린 셰릴은 인생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생각으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불행했던 과거를 잊기 위해 난잡한 생활을 이어가던 셰릴은 어느 날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안내 책자를 보게 된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린 셰릴은 인생의 마지막 도피처라는 생각으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읽던 책을 접고 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겨울 햇살에 눈이 부시다.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나는 셰릴 스트레이드가 쓴 논픽션 '와일드' 끝 부분을 읽는 중이다. 멕시코 국경 근처에서 출발해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케스케이드 산맥을 따라 캐나다 국경 근처까지 4285㎞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홀로 걸은 셰릴은 콜로라도 강변에 발톱 여섯 개가 빠진 발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는 중이다.’

2013년 출간된 유시민 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 머리글 첫 단락이다. 오랜 외도(?) 끝에 비로소 가정(?)으로 돌아온 그가 간만에 느끼는 일상의 행복이 담담하게 전해진다. 여섯 발톱 모두 빠진 두 발을 강물에 담그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26세의 메릴 스트레이드. 오랜 방황의 터널이 마침내 끝나는 지점에서 그녀가 맛보는 행복감 또한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세계적 명사가 되어 있는 그녀다. 2012년 봄 출간 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와일드(Wild)’는, 2014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활자 속에서 상상으로만 그려졌던 대자연의 풍광과 한 여성의 내면이, 사이먼 가펑클의 익숙한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으로 관객들 눈에 펼쳐진다.

그녀가 걸은 ​PCT는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The Pacific Crest Trail)’을 말한다. 미국 서남단의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를 가로질러 북서쪽 캐나다 국경지대에서 끝나는 장거리 트레킹 코스다.최고 해발 4000m까지 넘어야 하는 험준한 지형, 수천㎞에 걸쳐 야생의 위험이 상존하는 이 머나먼 길을, 세상의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쳐진 20대 중반 여성이 석달 이상 혼자 걸어낸 것이다.

찢어질 듯 가난했고 아빠의 음주와 폭력이 일상적 공포였던 유년 시절, 그럼에도 딸에게는 늘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던 어머니. 이어지는 부모의 이혼과 함께 엄마와의 안전하고 행복한 시간이 어린 인생 처음으로 찾아왔다. 불행이 늘 그렇듯 행복의 시간은 찰나.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동아줄이었던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그녀에게 마약과 섹스가 도피처가 되면서 몸과 마음은 금세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난잡한 일상이 정신적 자학과 자책으로 이어지며 스물 중반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파괴되는 어느 순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관한 안내 책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나먼 길로 떠나라는 어머니의 계시처럼 필이 꽂혔다. 세상 밖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그녀에게 필요한 길이었고, 예전에 어머니가 알던 그 딸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만 같은 그런 길이었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엄마가 우리 딸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딱 하나 있다면 바로,너의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생전의 엄마가 늘 자랑스러워했던 그 딸로 되돌아가기 위해 셰릴은 험난한 그 길로 떠난다.조그만 자신의 키만큼이나 높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름답지만 험준한 그 길 위에서 세릴은 자신의 과거와 만난다. 회상 속에서 지난 인생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이어진다. 짐승, 인간, 고립 등 위기의 순간이 오지만 그때그때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간다. 인생 밑바닥에서 마지막 도피처라고 생각해 시작했던 그 길에서 셰릴은 비로소 자신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었고, 엄마가 생각했던 예전의 그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그대의 몸을 초월해라.(If your nerve deny you, go above your nerve)’ 트레킹 초반에 나오는 에밀 디킨슨의 시 첫 구절, 앞으로 걸어야 할 먼 길을 눈앞에 둔 당시에는 그저 셰릴의 각오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한 구절은 여정 동안 그녀의 내면 의지로 더 단단히 승화되었고 결국은 그녀의 성취에 결정적 동인(動因)이 된다. 

멀고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종착지 ‘신들의 다리(Bridge of the Gods)’에 섰을 때의 그녀는 3개월 전의 그녀는 이미 아니었다. 영화의 주제 음악이나 다름없는 사이먼 가펑클의 ‘엘 콘돌 파사’가 엔딩을 장식한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좁은 세상 달팽이보다는 저 하늘 날으는 새가 되리라’ 다짐했고, ‘박혀 있는 못보다는 자유로운 망치가 되고 싶어’ 했던 그녀 셰릴 스트레이드. 어두운 인생 터널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만났지만 그 터널을 벗어난 건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였다. 

“혼자 걸으면 외롭지 않으세요?“도중에 만난 누군가가 물었다.세릴은 대답한다. “내가 있던 그 곳이 더 외로웠어요.”사람들은 대체로 덜 외로워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하며 오늘을 산다.서 있는 자리가 외롭고 오늘이 덜 행복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하루 일정을 마친 세릴이 텐트 속에서 일기장에 써넣는 메리 올리버의 시 ‘여름 날(The Summer Day)’ 몇 구절이 관객들 뇌리에 오래 남는다.

Tell me, what else should I have done?

말해보세요, 제가 달리 무엇을 했어야 했나요?

Doesn’t everything die at last, and too soon?

결국엔 모든 게 너무 일찍 사라져 버리잖아요?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말해보세요, 당신이 이 소중한 삶을 걸고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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