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사기 범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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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명의를 빌려주면 할부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고, 자동차를 렌터카로 돌려서 매달 수익금을 주겠다.”

한때 기승을 부렸던 고전적인 중고차 대출 사기 수법이다.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된 맹모씨(48) 3명은 출소 후 지난해 7월 유령 무역회사를 차렸다. 이어 그해 9월 제주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수출업체 대표와 임원 행세를 한 이들은 중동과 동남아에 고급 외제차를 무관세로 팔아 2000만원의 관세 차익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들은 중동에 있는 무역상에게서 선수금을 받았다. 이 금액으로 할부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현혹했다.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를 권유한 모집책들은 반들거리는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 사기단은 경기도 판교에 있는 수입차 전시장에 피해자들을 데려가서 벤츠, 아우디, BMW에 시승하는 기회를 줬다.

이 고급차는 해외로 수출되기에 인근 매매상에 보관하도록 했다.

한 피해자는 무역회사에서 매달 400만원이 넘는 할부금을 수개월 동안 대신 내줬고, 은행이 지급을 담보로 한 당좌수표를 보여주자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출을 앞둔 자기 차량이 경기도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외제차 3대를 24000만원에 구매한 것을 알게 된 40대 한 주부는 의심을 했다.

각 개인마다 명의를 빌려야하고, 위임장을 쓰고, 자동차 양도증명서를 작성하고, 캐피탈업체 직원과 딜러와 상담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을까?

수입차 매매상을 차리고 차량을 수출하면 앉아서 수백억원을 벌 수 있는데 골치 아프게 명의를 빌려 가면서 투자자는 왜 모집할까?”

여러 의심에도 대다수 피해자는 지난 2월 말 사기단이 차린 무역회사가 부도난 소식을 듣고서야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도민 120여 명이 260대의 외제차를 구입, 19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할부금 이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액은 250억원으로 추산된다.

사기 경고음은 이미 울리고 있었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수입차 전시장은 물량이 부족해 차량 출고가 지연됐다. 일부 딜러들은 단기간에 수 천 만원의 돈을 챙겼다. 그 바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아닐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억원대 외제차가 대포차 시장에서 불과 수백만원에 거래됐다. 피해 차량을 대포차로 취득한 장물업자는 사채업자에 담보로 제공, 3500만원의 대출금을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과속과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을 한 과태료 고지서 수백장이 피해자들에게 날라 왔다.

피해자들은 지난 2월 제주시 자동차등록사무소를 방문해 차량 운행정지를 신청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회수된 피해 차량은 260대 중 10여 대에 불과하다.

피해자 모임에 왔던 50대 여성의 사연은 안타까웠다. 시간제로 마트에서 일하며 월 99만원을 받고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이 여성은 이웃의 권유로 8400만원에 달하는 외제차 할부 구매계약서에 도장을 눌렀다.

사기꾼들이 잠적하자 매달 140만원의 할부금을 갚으려고 카드 대출까지 받았으나 최근 3개월간 연체를 했다.

집을 찾아온 채권 추심업자는 장애인 아들에게 연체금 납부를 독촉했다. 고급차를 소유한 탓에 공공임대 아파트 계약 연장은 어렵게 됐다. 주범 3명은 경찰에 붙잡혔으나 범죄 수익금은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의를 빌려준 피해자들은 파산을 하고 빚더미에 앉았다.

명의도용 범죄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본인 명의로 된 대출 계약의 원리금 상환 의무는 본인에게 귀속된다며 주의를 당부해왔다.

경고로 그칠 일이 아니다. 모든 할부·대출 계약서에 이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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